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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의 실탄, 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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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청양고추는 1983년 한국의 한 종묘회사가 개발한 품종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청양고추 종자를 심기 위해서는 독일 종묘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1998년 IMF 사태로 인해 한국의 그 종묘회사가 외국기업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국내 5대 종묘사 중 4곳이 다국적 기업에 인수·합병(M&A)되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음 해 뿌릴 종자는 남겨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종자는 농업의 근본이고 농부에게는 생명처럼 귀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계 종자 시장은 점점 독과점 체제로 형성되고 있다. 연간 규모가 6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종자시장은 미국·중국·프랑스·브라질·캐나다·인도 등 6개국이 세계 종자시장의 80% 가까이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 보리 등 주요 곡물 종자를 제외한 대부분 종자를 해외에 의존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구매했더라도, 그 종자의 대부분은 '외국산'이다. 고구마는 80~90%가 일본 품종이다. 귤 97.5%, 포도 95.9%, 배 85.8%, 사과 79.8%, 양파 70.9% 등 국내 주요 과채류 12개 품종의 외국산 품종 점유율은 무려 72.5%이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는 파프리카 종자 한 봉지(7g)의 가격은 약 60만~80만 원 수준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다. 농산물 대부분의 종자가 외국산이라니, 오죽했으면 '대한독립은 했지만 종자독립은 못 했다'라는 말이 나올까?
2010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가 해외에 지급한 농작물 종자 로열티는 1,358억 원에 달하지만, 국산 종자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로열티는 26억 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많은 비용을 내고 매번 종자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자회사에서 파는 종자는 우수한 부모 종자를 교배해 발육이 좋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우수한 F1 종자들이다. 하지만 이 종자들을 다시 심어서 나는 2대 잡종 F2는 열성형질이 나타나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F1 종자를 사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정부도 종자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2년부터 10년간 골든시드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진행했다.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는데, 유럽에서 샐러드용 채소로 주목받고 있는 '빨간 배추'와 수박과 비슷한 정도의 단맛을 내는 미니 파프리카 '라온', 700g 내외의 1인용 소형 양배추 등이 있다. 이렇듯 일부 채소는 품종을 개발해 국내 종자 산업의 기초를 다지고 수출길까지 열었지만, 투자 대비 실적을 보면 갈 길은 여전히 멀다는 평가이다.
종자연구 권위자인 임용표 충남대 명예교수는 "종자는 농업의 반도체와 같은 역할을 하며 농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한 나라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또한, 다양한 바이오 기술과 디지털 역량을 결합하는 이른바 '디지털 육종' 기술을 통해 종자 산업을 첨단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종자산업은 농업의 핵심 요소이자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한국 농업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실탄인 종자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일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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