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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 속 세계 주요 지도자 지지율 동반 추락... 진영논리 기대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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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인데 모든 사람이 울고 웃는 숫자, 인플레이션 시대에 유일하게 떨어지는 이 숫자로 나라마다 울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지율이 40% 아래로 내려가 있다.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뒤지고 있다. 유럽에선 낮은 지지율로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국민불신과 연정붕괴에 따른 정치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사임을 발표했다. 이웃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캐나다 정상들도 추락한 지지율로 현안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지율 40%대를 유지하는 게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글로벌 리더십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고유가, 인플레이션, 공급망 문제 등 글로벌 현안에 현실성 있는 해법이나 합의문 하나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국제사회의 비판 또한 찾기 힘들다.
지지율이 낮으면 글로벌 무대에서 지도자들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국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의 장밋빛 발언과 약속은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외교적 부도수표에 가깝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는 격으로 신뢰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럴수록 지도자들도 국제 현안보다 내부 정치에 몰두하게 된다. 한두 지도자도 아닌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바닥이라면 글로벌 리더십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 ‘돈룩업’에 등장한 대통령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지구멸망 문제마저 쇼로 만들어 버렸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지금 세계 지도자들도 숫자를 올려야 하는 다급한 현실에 처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지구적 유행병인 팬데믹으로 선언한 건 2020년 3월. 한 달 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는 세계 주요 정상들의 지지율이 급등세로 돌아선 결과를 공개했다.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지도자들은 8~25%포인트 올랐고 최근 사임한 ‘영국판 트럼프’ 보리스 존슨 총리 지지율도 64%(+18%포인트)를 기록했다. 유럽의 코로나 대응실패 사례로 비판받은 이탈리아 총리조차 27%에서 71%로 치솟았다.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취임 후 가장 높은 46%(+3%포인트)를 기록, 재선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2년 뒤 코로나 위기가 진정된 지난달 28일 모닝컨설트가 공개한 조사 결과는 딴판이다. 세계 22개국 가운데 지도자 지지율이 50%를 넘는 곳은 6개, 40%대는 3곳에 불과했다. 지지율이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는 벨기에 미국 노르웨이 캐나다 스페인 독일 프랑스의 7곳이었고 폴란드 체크 네덜란드 영국 한국 오스트리아의 6개국은 20%대에 머물렀다.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에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절반 이상의 지도자들이 신용불량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카를 네함머 총리와 함께 최저 지지율인 25%를 기록했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위기가 지도자에게 기회라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코로나 위기 초기 여론은 결집했고 정치적 반대자도 지도자에게 힘을 실었다. 위기가 발생할 때 현상인 이른바 결집효과였다. 9ㆍ11사태 뒤 부시 대통령이 89.8%로, 이란 인질 구출작전에 실패한 카터 대통령이 32%에서 56%로 지지율이 오른 것도 초당적인 여론이 형성된 결과였다.
여론이 밀어주는 결집효과에도 지도자들의 위기 인식과 대응의 차이는 컸다. 작은 차이일지라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위기탈출의 결단력과 리더십의 부재는 재앙을 불렀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정권들이 바뀐 것도 그 같은 결과였다. 트럼프의 경우 코로나 초기엔 지지율이 반등해 재선 가능성이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갈수록 코로나 위기에 미적대며 지각 대응했고 이에 대한 비판에도 대응 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결국 정치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트럼프는 같은 해 11월 재선에 실패했고 공화당은 민주당에 의회까지 내줘야 했다.
지금 세계 지도자들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악재들은 이른바 복합 위기다. 3년째로 접어든 코로나의 재확산과 함께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인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고유가 등 쉽게 진정되기도, 해법을 찾기도 힘든 위기들이다. 코로나보다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3각 파도처럼 밀려오는데도 지도자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자 지도자 불신이 세계적 현상이 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계 지도자들의 지지도 추락은 2008년 금융위기 전후와 유사하다. 당시 530만이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선에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속에 20%대로 곤두박질쳤다. 세계 지도자들 역시 경제 문제로 인기가 거의 없었다. 퇴임을 앞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물론 유럽의 지도자를 자처하던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율도 30%대로 내려앉았다. 영국 고든 브라운은 10%대의 치명적 수준까지 떨어졌고, 강경 우파를 등장시켜 반등을 꾀한 일본의 아소 다로 내각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
지도자는 여론을 얻지 못하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그 여론의 바로미터가 지지율이고, 지지율에 힘입어 지도자는 통합과 연대, 협력을 주도하며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정권 재창출, 재선의 길이 지지율에 있고, 정책과 입법도 지지율 숫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경제 악재들은 지지율과 맞물려 움직인다는 점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미 대선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던 것처럼 지지율에서 경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경제난 속에 호재를 찾기 힘든 때 지도자들이 종종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진영논리와 정치적 양극화다. 외부에서 위기와 갈등을 고조시키고 내부에선 자극적 행보로 여론몰이와 갈라치기를 하는 것이다. 과거 대북 위기나 과거청산, 외교갈등을 이용한 게 그런 사례에 속한다.
세인트존피셔대학의 캐슬린 도노반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1981~2015년 사이 미국 대통령 지지율은 경제 이슈에서 갈수록 자유로워졌다. 레이건과 부시 정부에선 경제상황 개선이 지지율에 영향을 주었지만 클린턴 정부에선 경제적 성과에도 지지율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에선 경제가 지지율 수치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는 대통령이 경제에 미칠 수단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지율을 좌우하던 경제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여론이 정치적 양극화, 당파성에 눈이 먼 결과라는 게 도노반 교수의 지적이다. 물론 민주주의 위기의 단면 뒤엔 온전한 여론의 반영을 막고 혐오스러운 당파주의와 정체성 문제를 활용하는 정치가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론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가 새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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