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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곪은 軍, 대체 누가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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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권과 군대는 전멸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뱉은 엄포다. '주적(主敵)'이라는 표현에 꽤나 민감했나 보다. 허나 대수로울 건 없다. '빈틈없는' 대비태세만 갖춘다면 북한의 협박은 고작 말에 그칠 뿐이다.
"언제든지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한다(5월 이종섭 국방장관)", "항상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7월 김승겸 합참의장)". 우리 군 최고 지휘부가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굳건하게 맞서는 각오가 묻어 있다. 안보를 핵심가치로 중시하는 보수 정부의 군 사령탑답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공군부대에서는 여군 하사가 숨졌다. 지난해 경종을 울리고 세상을 떠난 이예람 중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이 중사의 마지막 근무부대에서는 여군 하사에게 코로나19 확진자의 침을 핥고 입맞춤하도록 강요한 엽기적인 성폭력 사건이 적발됐다.
앞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는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을 지키는 수방사 부대원이 세상을 떠난 건 올해에만 세 번째다. 육군 신병교육대에서는 훈련병들이 기한이 지난 백신을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모두 헤아리기 숨가쁠 정도다.
그럴 때마다 군 당국의 대답은 판에 박힌 듯 똑같다. "담당자의 실수다", "진상을 조사해 엄벌에 처하겠다",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다짐하며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어떻게든 은폐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누구 하나 시원스레 책임을 인정하고 폐쇄적인 군 문화를 바꾸려 앞장서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차라리 구타 사례를 신속하게 인정한 해병대가 낫다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강 확립.' 말은 좋다. 반면 행동은 딴판이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제 아무리 외쳐도 일선부대에는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다. 군 특유의 가치이자 철칙인 '상명하복'이 무색할 지경이다. 군 문화가 갈수록 왜곡되는데도 이를 바꾸려는 문제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말과 행동, 지시와 이행, 규정과 현실이 따로 가는 괴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원칙을 지키고 군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당연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군이 과연 유사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이 곧 실시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훈련이다. 북한의 말 폭탄에 맞서 본때를 보여줄 기회다. 야외에서 실제 병력과 장비가 실전상황처럼 움직이는 기동훈련도 예년보다 수준을 높였다. 북한을 주적으로 경계하는 우리 군의 위력을 뽐내는 자리다.
군 내부에 구멍이 숭숭 나서는 곤란하다. 외부의 적을 상대로 존재감을 키우기 앞서 속으로 곪은 병폐와 악습부터 도려낼 때다. ‘빈틈 있는’ 군을 믿을 수 없다는 아우성이 더 커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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