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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허준이 교수가 만일 '독박육아'를 해야 했다면 [세상의 관점]

입력
2022.08.03 17:30

<5>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 메리 앤 메이슨 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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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 및 해설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 및 해설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독박 육아 아니에요."

지난달 13일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회 기자간담회장에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부인 김나영 박사

지난달,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수학계 역사에 남을 낭보에 사회 각계에서 축하가 이어지던 중, 과거 허 교수 인터뷰의 한 대목에 대중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처음엔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창인 아내와 함께 수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두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는 공부를 접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 저의 불성실한 육아 참여 탓"이라는 농담 섞인 표현이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들썩였습니다. '천재적 남성 수학자의 성취 뒤엔, 같은 학문적 경로를 택하고도 육아를 위해 중도 포기해야 했던 여성이 있다'고 읽힐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죠. 이를 의식한 듯, 지난달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허 교수의 부인 김나영 박사는 "남편이 기저귀도 저만큼 많이 갈고, 특히 둘째의 경우 밤중에 돌보는 일은 남편이 다했다"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일견 '해프닝'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실 이 같은 상황은 많은 젊은 부부에게 현실입니다.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고학력 연구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 펴냄)'를 본다면, 임신·출산·양육이 공부하며 일하는 여성의 삶에 어떻게 결정적이고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지 방대한 질적·양적 자료를 통해 알 수 있게 됩니다.

2000년, 미국 UC 버클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원 입학생의 50%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년 교수직의 23%만이 여성이었습니다. 단순히 과거엔 여성 대학원생이 적었던 탓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00년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의 39%가 여성에게 수여됐지만, 임용된 신규 교원의 28%만이 여성이었거든요.

버클리의 첫 여성 대학원 학장 메리 앤 메이슨은, 이 같은 불균형을 보고 두 명의 동료와 이 주제에 천착합니다. 10여 년이라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계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들의 가족 구성 효과가 이들의 삶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살펴봤습니다.

연구진은 학계 내 성평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가족 구성의 격차'에 주목합니다. 정년을 보장받은 여성 교수와 남성 교수의 수를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가족 형태' 연구를 통해 이들이 커리어와 가정의 목표를 동일하게 실현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본 거죠. 만일 같은 커리어 경로를 따르면서도, 여성 연구자는 남성 연구자에 비해 결혼과 자녀 돌봄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면 '진정한 성평등'이라 볼 수 없겠지요.

조사 결과, 학위 기간 중에 아이를 낳은 여성 대학원생은 대학에서의 연구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고, 박사후연구원 기간을 마치기 전에 출산하는 여성은 연구가 중심이 되는 커리어를 포기할 가능성이 박사후연구원 남성에 비해 2배 높았습니다(267쪽). 두 배우자가 모두 연구자일 때, 배우자가 만족스러운 자리를 찾지 못하면 남성 박사학위자보다는 여성이 대학을 떠날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257쪽).

2013년 출간된 책은 다소 시차가 있지만 오늘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은 2020년이 되어서야 25% 여성 교원 확보를 목표로 하는 국공립대 여성 전임 교원 정원제를 도입했습니다(2000년 국공립대 여성 전임 교원 비율은 18.3%). 연구가 시작된 2000년 UC 버클리의 정년트랙 교수직의 여성 비율(23%)을 고려하면, 한국은 20년 전 미국의 상황에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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