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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에 첫발을 디민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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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8월 8일 오후 6시 32분, 알프스 몽블랑 기슭 샤모니 청년 미셸 파카르(Michel-Gabriel Paccard, 1757~1827)와 자크 발마(Jacques Balmat, 1762~1834)가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07m) 정상에 섰다. 그들에겐 피켈도 아이젠도, 자일도 없었다. 아니 유럽인에게 알프스는 눈사태로 인간을 심판하는 신의 영역이었다. 1760년 오라스 베네딕트 소쉬르라는 스위스 자연과학자가 알프스의 식물 채집여행에 나섰다가 몽블랑을 보고는 ‘저 봉에 처음 오르는 이에게 큰 상금을 주겠다’고 공약한 뒤로도, 무려 26년이나 엄두를 낸 사람이 거의 없었을 만큼 불경(不敬)의 두려움이 컸다.
산양 사냥으로 가죽을 얻고 크리스털을 채취해 어렵사리 생계를 잇던 발마가 그 너머를, 상금을 동경했다. 그는 맞은편 등성이에 올라 루트를 모색하는 등 약 3년간 등정을 준비했고, 앞서 1783년 맨 처음 몽블랑 등정팀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같은 마을 의사 파카르와 의기투합했다. 8월 7일 오후 둘은 도전에 나섰다.
개인 장비라고는 나무 지팡이와 크레바스에 빠질 경우에 대비한 장대가 전부였다. 그들은 빙판 경사면을 기다시피 올라 밤 9시 무렵 해발 2,392m 지점에서 텐트도 없이 노숙했고, 다음 날 새벽 4시 30분 다시 출발해 14시간 30분 만인 오후 6시 32분 마침내 정상에 섰다. 그리고, 달빛으로 길을 찾으며 4시간 30분 만에 무사히 하산했다.
둘 중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는지 등을 둘러싸고 알력이 있긴 했지만, 둘의 업적으로 고산등반이 시작됐다. 이후 1865년의 마터호른(4,505m) 등정까지 알프스의 다른 봉우리들로, 히말라야의 고봉들로 산악인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스포츠로서의 등산을 의미하는 ‘알피니즘’이란 말이 그렇게 알프스에서 만들어졌고, 최소한의 장비 등반을 가리키는 ‘알파인 스타일'(alphine style)이란 말이 초기 알프스 등반가들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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