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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주시 이사비로 1500만 원을 그냥 준다고?"... '깡통전세'의 서막

입력
2022.07.31 23:00
수정
2022.08.03 11:4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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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덫, 전세 사기]
<상> '여전히' 정부 비웃는 사기 현장
본보, 내부자 통해 '동시진행' 추적
서울·수도권 빌라 '깡통 전세' 비상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 배우한 기자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 배우한 기자

6월 준공 승인이 떨어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A신축 빌라. 지하철 화곡역이 코앞인 데다 시스템에어컨, 스타일러 같은 고가 가전제품이 무상 옵션이라 미혼 직장인은 물론 신혼부부의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투룸 전셋값은 3억8,000만 원. 29일 현장에서 만난 중개업자의 설명에 마음이 당겼다.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전세대출 80%까지 나오는데 저희가 대출까지 전부 알아봐 드려요. 이 빌라는 잡혀 있는 선순위 채권도 없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무조건 받을 수 있어요. 전세금 떼일 걱정 없죠."

중개업자가 던진 회심의 한 방. "요즘 전세대출 이자 비싸잖아요. 입주하시면 입주 당일 이자 지원금으로 1,500만 원 입금해 드릴게요. 중개수수료도 안 받을게요. 이만한 조건 어디서도 못 찾아요."

오래된 집도 아니고 신축 빌라를, 그것도 거금까지 얹어 줘가며 세입자를 구하는 게 조금 의아스럽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건축주가 건축대금을 치르려고 세입자를 급하게 구하느라 수수료를 조금 세게 걸었는데, 그걸 세입자 분한테 다 드리는 거예요(세입자한테는 안 받겠다는 뜻)."

이 솔깃한 제안, 덥석 받아도 되는 걸까. 정답부터 얘기하면,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업계의 복수 관계자는 A빌라에 입주하는 순간 세입자는 지옥 같은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피 같은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이 험난해 적잖게 마음고생 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 보증금도 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전세 사기 일벌백계" "경찰 전담반 만들어 강력 단속"을 공언했지만 이후 찾아간 현장은 정부 대책을 비웃고 있었다. '세 모녀 사기'와 판박이인 편법 전세 계약이 여전히 판치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최근 일주일간 여러 제보를 바탕으로 편법 전세계약 현장 10여 곳을 직접 확인했다. 이어 세입자 피해로 이어지는 '깡통 전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봤다.

전국으로 퍼진 '동시진행'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해당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해당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동시진행'. 최근 논란이 된 전세 사기 구조를 이해하려면 이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한다. 아파트에 견줘 매매가 어려운 빌라(신축·구옥) 같은 다세대 주택을 팔기 위해 고안된 분양 기법이다. 2~3년 전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처음 선보였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데다 무엇보다 효과도 만점이라 지금은 전국으로 퍼졌다는 게 제보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동시진행은 세입자 전세금으로 분양대금(매맷값)을 치르는 걸 일컫는다. 과정은 이렇다. 집주인은 신축(또는 구옥) 빌라가 안 팔려 걱정이다. ①이때 부동산 컨설팅 업자가 끼어든다. 집주인이 원하는 빌라 가격 2억 원보다 비싼 2억5,000만 원에 팔아줄 테니 차액 5,000만 원을 수수료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한다. 집주인이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컨설팅 업자는 무슨 재주로 빌라를 더 비싸게 파는 걸까. ②바로 매매 호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놓는 것이다. 신축 빌라는 매매시세란 게 없으니 세입자도 굳이 전세시세를 따지지 않는다. 한 중개업자는 "공시가 1억4,800만 원(실거래가 1억9,000만 원)짜리 빌라를 3억 원에 전세 계약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 세입자가 2억5,000만 원에 입주하면 집주인은 원하는 집값(2억 원)을 받은 셈이 되고, 컨설팅업자는 수수료로 5,000만 원을 챙긴다. 다만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2년 뒤 전세금을 돌려줄 새로운 집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③컨설팅 업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주인 명의를 이른바 '바지 집주인'에게 넘긴다.

바지 집주인은 돈을 한 푼도 안 들인 '무갭(전셋값으로 매맷값 해결) 투자'에 현혹된 이들이다. 무갭으로 빌라를 사들이고, 2년 뒤 시세차익을 거두고 빠지면 된다는 컨설팅 업자 말에 꼬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컨설팅 업자가 취득세는 물론이고 300만 원가량 지원금까지 주니 솔깃할 수밖에 없다.

본보가 확인해 보니, 이렇게 무갭 투자자 명의만 확보해 컨설팅 업체에 돈을 받고 넘기는 전문업체도 있었다. 무조건 무주택자만 확보하는 게 원칙이다. 다주택자는 집을 살 때 취득세가 배로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주택자 명의를 넘기면 컨설팅 업체에서 대략 300만~500만 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결국 컨설팅 업체가 챙기는 수수료(5,000만 원) 중 일부는 전세 세입자를 구해 준 중개업소, 바지 집주인을 찾아준 명의 대여업체, 전셋값을 올리기 위해 감정가를 뻥튀기해준 감정평가사 등에게 골고루 흘러간다.

이사 지원비 1,500만 원의 정체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해당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해당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이렇게 집주인과 컨설팅 업체가 동시진행을 하기로 계약하면, 컨설팅 업체는 분양 직원과 중개업소 직원들만 이용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 해당 빌라 매물을 등록한다.

첫 사례로 소개한 화곡동 A빌라는 지난달 초 전용 앱에 올라왔다. 방별 구조는 다르지만 분양가와 전셋값은 전부 같다. 투룸의 경우 분양가와 전셋값 모두 3억8,000만 원. 방별로 전세 세입자를 현재 모집하고 있다는 뜻의 '동시', 이미 세입자를 구했다는 의미의 '완료' 표시가 떠 있다.

화면 한쪽엔 'R매매 67, 전세 50'이라고 적혀 있다. R는 리베이트(rebate·보상금)의 약자로, 매매를 성사시키면 6,700만 원의 보상금을, 전세 세입자를 구하면 5,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내준다는 뜻이다. 분양 관계자 A씨는 "사실상 매매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고 최근 정부가 동시진행 단속을 예고하자 형식적으로 매매를 써둔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시진행=깡통 전세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A단지는 이제 갓 입주를 시작해 공시가격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전셋값은 과연 적정가일까. 동시진행은 거액의 수수료를 노리고 컨설팅 업체가 끼어드는 방식이라, 동시진행으로 진행된 빌라는 적정가보다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리베이트가 많을수록 뻥튀기가 심하다는 뜻이 된다.

A단지 역시 각종 수수료를 제외하면 실제 가격은 3억 원 안팎이 적정가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중개업자(실제로는 컨설팅 업체)는 5,000만 원 수수료 중 1,500만 원을 기자에게 '이자 지원비 조로'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세입자로선 1,500만 원을 챙기면 그 순간은 좋을지 몰라도, 이 단지는 곧바로 깡통 전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분양가와 전셋값이 똑같이 책정됐는데, 이마저도 감정가 부풀리기로 과장된 가격이기 때문이다. 2년 뒤 빌라 매맷값이 떨어지면 3억8,000만 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분양 관계자 B씨는 "세입자가 HUG 보증에 가입하면 보증금을 날릴 일은 없지만 최근 HUG 심사가 강화되면서 보증금 반환이 거절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입자가 당장 손해를 보지 않아도 결국 누군가의 불로소득을 국가가 보전해 주는 식이라 업계에서도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수도권 신축 빌라 90%가 동시진행"

전용 앱에 등록된 매물은 실시간으로 분양 업체 관계자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으로 옮겨진다. 매매·전세를 성사시키면 이만큼의 'R'를 주겠다는 식으로, 90%가 동시진행 매물로 보면 된다는 게 분양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동시진행 매물이 쏟아지면서, 세입자 1명당 리베이트로 8,000만 원을 내건 매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동시진행 매물은 얼마나 되는 걸까. 분양 관계자 C씨는 "서울·수도권에서 진행 중인 신축 빌라 분양은 90%가 동시진행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오래된 빌라(구옥)도 똑같이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컨설팅 직원은 리베이트를 챙기려고 본인이 세입자로 들어가기도 한다"며 "어차피 2년 뒤에 HUG 보증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으니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동시진행 매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중개업자가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만큼 배경을 모르는 세입자는 혹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찾은 동시진행 매물만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강서구 등촌동, 양천구 신월동, 경기 성남시 신흥동, 인천 미추훌구 숭의동 등 10여 곳이 넘었다. 모두 리베이트로 2,000만~5,000만 원이 내걸린 매물이다.

공시가 150%의 역설

동시진행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탄탄한 보증 제도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HUG는 전셋값이 공시가의 150% 이내면 전세보증을 해준다. 가령 공시가가 1억5,000만 원이면 전셋값 2억3,000만 원까지 보증 가입이 허용된다. 보증 대상을 넓히려는 취지겠지만, 웬만한 빌라는 공시가 150%를 적용하면 전셋값이 매맷값을 역전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실제 지난해 입주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 B빌라는 전셋값이 2억8,000만 원 안팎이다. 공시가격이 1억8,600만 원인데, 여기에 맞춰 최대로 전셋값을 높인 것이다. 최근 거래된 매맷값은 전셋값보다 적은 2억6,000만~2억7,000만 원 선이다.

결국 2년 뒤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에 무갭 투자자가 된 '바지 집주인'은 전셋값이 매맷값에 못 미치는데 그걸 모르고 덥석 명의를 넘겨받는 구조다. 업계에선 "공시가 150%, 바지 사장 사기"라고 표현한다.

"구속하면 최소 교도소 하나 더 열어야"

최근 정부가 전세 사기 엄정 대응을 예고하면서 빌라 분양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본보가 분양 업자들만 모여 있는 카톡방(7월 1일~27일)을 확인했더니, 곧 이어질 검찰 수사에 대한 불안감을 쏟아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화방의 한 참가자가 "구속 수사 원칙이면 최소 교도소 하나 더 열어야 할 듯"이라고 하자 "새로 만든 교도소에서 새로운 동시(동시진행)가 만들어지겠죠", "이제 동시에 '동'짜(자)도 못 꺼내겠다. 이제 매매로 다시 돌아가려나" 같은 답이 이어졌다. 다른 참가자는 "집주인은 몰랐다고 할 테고 컨설팅 회사는 분양 업체 탓으로 몰면 결국 분양 업체 직원만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고 썼다.

분양 관계자 D씨는 "정부의 전세 사기 대책 발표 이후 상당수 업자가 카톡방에서 나갔다"며 "업계에서도 상당히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파멸의 덫, 전세 사기> 글 싣는 순서


<상> '여전히' 정부 비웃는 사기 현장

<중> '여전히 고통' 사기 피해 그 이후

<하> 먹잇감 된 2030, 해결책은...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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