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 요구한 12세 소녀... "내 생명은 안 중요합니까?"

입력
2022.07.29 14:46
수정
2022.07.29 16: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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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웨스트버지아주 하원 45초 격정 연설
"내 인생은 어쩌나"... 그럼에도 법안 통과

12세 소녀인 에디슨 가드너가 28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에서 임신중지권 폐지 입법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12세 소녀인 에디슨 가드너가 28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에서 임신중지권 폐지 입법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내 인생은 어떡합니까?”

28일(현지시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州) 하원 공청회장. 12세 소녀 에디슨 가드너가 증인석에 서서 주의원들에게 따져 물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낙태권) 폐지 결정 이후 후속 입법을 추진한 공화당 의원들을 막아서기 위해서였다.

중학생인 가드너는 "(강간당해 임신한다면) 어린 아이인 내가 또 다른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연설 시간은 45초에 불과했지만 파장은 컸다. 강간으로 임신하고도 주법 때문에 임신중지 수술을 곧바로 할 수 없었던 오하이오주 10세 소녀의 비극적 사연이 겹쳐져 더욱 그랬다.

"임신 트라우마, 왜 내가 견뎌야 하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 거리에서 지난달 30일 임신중지 권리 지지자들이 연방대법원의 낙태 권리 폐지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존스타운=AP 뉴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 거리에서 지난달 30일 임신중지 권리 지지자들이 연방대법원의 낙태 권리 폐지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존스타운=AP 뉴시스

보수 성향으로 기운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었다. 공화당이 장악한 웨스트버지니아 하원은 임신중지 수술을 금지하고, 수술 집도 의사를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처리를 시작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임신중지권 박탈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 의료인, 성직자, 시민운동가 등 90여 명이 증인으로 나서 발언했고, 가드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가드너는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나는 위대한 일을 할 거고, 그래서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기회를 박탈당해야 하는지 반문했다.

"어떤 남자가 나를 희생양으로 골라 차마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짓을 나한테 저지른다고 쳐요. 그래도 어린 아이인 내가 또 다른 아이를 낳아야 하나요? 내가 왜 임신의 육체적 고통에 노출돼야 하죠? 내가 왜 임신과 출산의 정신적 충격을 견뎌야만 하나요? 내 몸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아무 권한도 없는 내가, 왜요?"

가드너는 임신중지권 폐지 법안에 찬성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은) 생명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내 생명은 어떤가. 내 인생은 중요하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격정 연설에도... 임신중지권 폐지 법안 가결

가드너의 호소는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은 임신중지권 폐지 법안을 69대 2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피해자에겐 임신중지 수술이 허용됐지만, '임신 14주 이전'이란 단서를 달아 한계가 크다.

연방대법원의 퇴행적 결정 이후 미국 각 주에선 임신중지권 폐지 법안 통과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임신 6주 이상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하지 않는 오하이오주에서 강간으로 임신한 10세 소녀가 인디애나폴리스주까지 찾아가 겨우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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