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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나온 손님 코에 흰 가루… 대낮에도 마약하자는 손님 많아"

입력
2022.07.30 23:00
수정
2022.07.31 21:3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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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유흥 쉼 없는 강남... "가게마다 마약방"
"마약 손님도 돈"... 가게 알면서도 신고 꺼려
버닝썬 사건 4년 지나도 마약신고 강남 최다
"당사자 거부하면 검사 불가, 위장수사해야"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호텔 유흥주점에서 가게 직원과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와 대로변에 대기 중인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호텔 유흥주점에서 가게 직원과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와 대로변에 대기 중인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호텔 앞. 1분이 멀다 하고 고급택시와 외제차, 밴 등이 섰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술에 취한 손님과 막 영업을 마친 종업원들을 태우러 온 차들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활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 강남 유흥주점에서 손님과 종업원이 마약 의심 물질을 섞은 술을 마시고 숨진 사건이 터졌다. 그때 대중의 가장 큰 궁금증은 바로 이것. “아침 7시에 술과 마약 파티를 한다고?” 이곳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강남 유흥가의 영업시간은 밤부터 이튿날 오전 1시까지 ‘1부’, 다시 오후 3시까지 ‘2부’로 나뉜다. 사건은 2부에 일어났다.

마약 하면 떠오르는 은밀하고 음습한 이미지는 더 이상 강남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곳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필로폰 등이 버젓이 유통되는 ‘마약 치외법권’이다. 한국일보는 여러 날에 걸쳐 강남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 8명의 얘기를 들어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손님으로부터 마약 권유를 받는 건 일상이다.”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종업원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대낮에도 술에 취한 강남... 도처에 널린 마약방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유흥주점에서 나온 손님들이 숙취를 이기지 못한 듯 거리에 앉아 괴로워하고 있다(왼쪽 사진). 뒤이어 퇴근 준비를 마친 주점 종업원이 차에 오르고 있다. 고영권 기자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유흥주점에서 나온 손님들이 숙취를 이기지 못한 듯 거리에 앉아 괴로워하고 있다(왼쪽 사진). 뒤이어 퇴근 준비를 마친 주점 종업원이 차에 오르고 있다. 고영권 기자

“마약 같이 하자고 달라붙는 손님 떼어내는 게 일이죠.” 2부 영업을 마친 혜민(29)씨가 말했다. 유흥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3년째인 그는 “룸에 들어가면 열 번에 한 번은 마약 먹자는 제안이 꼭 들어온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 주사기가 널려 있거나 화장실에서 나온 손님 입과 코 주변에 흰색 가루가 묻어 있는 모습을 본 것도 부지기수다.

영은(29)씨는 “솔직히 그 가게(사망 사건 주점)가 운이 나빠 걸린 거지 마약방은 어느 주점에나 있다”고 귀띔했다. 마약방은 필로폰 등을 투약하는 손님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다. 종업원들은 아이스(필로폰), 캔디ㆍ도리도리(엑스터시), 스페셜K(케타민) 등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서윤(27)씨는 손님의 권유로 액상 케타민을 먹어봤다. “빈속에 술을 콸콸 들이붓는 느낌이었는데 금세 정신이 아득해졌어요.” 특히 스페셜K는 ‘데이트 성폭행’ 약물로 악명이 높았다.

희주(28)씨는 깜짝 놀랄 얘기를 털어놨다. 사건이 발생한 주점, 같은 방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을 또 봤다는 것이다. “손님이 눈을 뒤집어 까고 입을 벌린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어요.” 일행은 “격렬한 운동을 하고 술을 마셔 저런다”고 둘러댔지만, 누가 봐도 마약 후유증이 분명했다. 손님은 처음부터 사람 죽은 방을 요구했다고 한다. 희주씨는 “뒤늦게 두 사람이 숨진 방인 줄 알고 소름이 끼쳤다”고 몸서리를 쳤다.

돈이 뭐길래... 사람 죽어도 '마약 손님' 또 받아

6일 여종업원이 사망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유흥주점 입구에 마약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적힌 경고문이 붙어 있다. 김재현 기자

6일 여종업원이 사망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유흥주점 입구에 마약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적힌 경고문이 붙어 있다. 김재현 기자

손님이 마약 섞인 술을 강요해도 종업원들은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가게 역시 도움 요청을 외면하기 일쑤다. 주점ㆍ영업진 몫인 주대(술값)와 웨이터봉사료, 종업원의 접대 봉사료(Table ChargeㆍTC) 모두 1시간 단위로 책정되는 탓이다. 문제가 생겨 1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돈을 내지 않으려는 손님과 실랑이를 해야 하니 어지간하면 눈을 감는 것이다. 경은(26)씨는 “주점 입장에선 단골손님의 비위를 맞춰야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봄이(25)씨도 손님이 준 술을 마신 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방을 뛰쳐나온 적이 있다. 그는 사장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지만 “(마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역고소당하면 책임질 거냐”라는 지청구에 할 말을 잃었다. 유연(30)씨는 “종업원들도 술에 몰래 탄 마약 때문에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어 직접 신고는 꺼린다”고 푸념했다. 기껏해야 종업원 온라인 커뮤니티에 ‘손님 블랙리스트’를 올리거나 ‘특정 영업사장(손님을 모으는 역할)은 마약방을 많이 주선하니 주의하라’는 공지를 공유하는 게 전부다.

"한국 마약청정국 아니다... 수사 방식 바꿔야"

최근 3년간 서울 관내 경찰서 마약류 112신고 건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3년간 서울 관내 경찰서 마약류 112신고 건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4년 전인 2018년 ‘버닝썬’ 사건은 강남 유흥가의 마약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도 변한 건 없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서울 253개 지구대로 4,269건의 마약 신고가 접수됐는데 강남경찰서 관할이 890건으로 20.8%를 차지했다. 특히 유흥주점과 클럽 등이 밀집된 역삼지구대와 논현1파출소, 두 곳의 신고 건수가 각각 230건과 250건으로 전체의 11.2%나 차지했다. 신고만 이 정도니 강남 전체에서 마약이 얼마나 돌고 도는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일선 경찰관들은 마약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도 검사와 적발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구대 경찰은 “검사에 필요한 소변·모발은 신체의 일부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며 “장에서 흰색 가루나 주사기 등 투약 정황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으면 검사를 강행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수사 당국은 한국이 더는 마약청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단속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경찰청의 베테랑 마약 수사관은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다양한 ‘위장 수사’로 적발 효과를 높인다”면서 “유흥가에 숨어든 경찰이 증거를 채집한다는 소문이 나면 업장이나 손님도 경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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