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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 후속조치 마련해주세요

입력
2022.07.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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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민법 개정안 통과와 후속조치 요구하는 '소망이'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좁은 의자에 서서 나무를 붙드는 벌을 받아야 했던 소망이(왼쪽)는 보호자의 소유권이 박탈되면서 새로운 견생을 살 기회를 얻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좁은 의자에 서서 나무를 붙드는 벌을 받아야 했던 소망이(왼쪽)는 보호자의 소유권이 박탈되면서 새로운 견생을 살 기회를 얻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저는 지난 4월 목에 줄이 묶인 채 나무에 매달려 벌을 받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과 안타까움을 샀던 골든 리트리버 소망이(1세)입니다. 훈련이라는 이유로 좁은 의자 위에서 나무를 붙들고 있는 행동을 반복해야 했고 심지어 돌과 물벼락을 맞아야 했습니다. 오랜 학대로 앞다리는 골절됐고, 심장사상충에 걸려 있었죠.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저를 구조하려 했지만 보호자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마음을 졸여야 했는데요. 보호자는 긴급격리조치 기간 보호비용을 기한 내 지방자치단체에 내지 않아 지난달 소유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저는 동물자유연대에서 치료를 받으며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2016년 경기 성남시의 한 주택가 빈집에서 새끼 허스키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방치된 채 힘없이 늘어져 있다. 방치됐거나 학대당한 동물을 소유주에게 돌려줘야 하는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경기 성남시의 한 주택가 빈집에서 새끼 허스키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방치된 채 힘없이 늘어져 있다. 방치됐거나 학대당한 동물을 소유주에게 돌려줘야 하는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실 제가 학대를 당했어도 동물단체가 구조할 수 없었던 건 법에 동물이 물건으로 규정되어서입니다. 동물은 보호자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것이죠. 학대당한 반려동물도 보호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돌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개가 사고를 당해도 보호자에게 '개 값'만 배상하면 됐고, 반려동물은 재산 압류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넣은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많은 시민의 호응을 얻었는데요.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도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후속 조치 없으면 민법 개정안 선언적 의미 그친다

동물복지국회포럼과 동물자유연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박홍근 의원실 제공

동물복지국회포럼과 동물자유연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박홍근 의원실 제공

민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후속입법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열렸습니다. 동물복지국회포럼과 동물자유연대,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었는데요.

참석자들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이 신설되더라도 후속입법조치가 따르지 않으면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 실질적 의미가 없다는 데 입을 모았습니다. 예컨대 반려동물을 법원의 강제집행 대상에서 제외하려면 동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한 민사집행법 개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2020년 9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와 경찰이 학대자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발견된 고양이 리치는 왼쪽 앞다리가 부어 있었고, 콧수염은 불에 그을린 듯 타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2020년 9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와 경찰이 학대자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발견된 고양이 리치는 왼쪽 앞다리가 부어 있었고, 콧수염은 불에 그을린 듯 타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현재는 동물을 다치게 하거나 살해했을 때 재물손괴죄를 적용하고 있는데, 동물이 물건이 아닌 법적 지위를 얻게 되면 재물손괴죄로 처벌하는 것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또 학대 처벌 규정 강화나 학대자의 입양, 사육 제한을 막기 위해서는 동물보호법 개정도 필수라는 겁니다.

조해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장은 "동물을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할 경우 모순되는 여러 규정에 대한 추가적인 개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현행 민법개정안대로 개정된다면 동물은 물건처럼 취급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동물이 물건 아니라면 무엇인지 논의 필요

국가별 민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 비교

국가 내용
프랑스 동물은 감각이 있는 생명체다. 동물은 이를 보호하는 법률의 유보 아래 재산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네덜란드 1.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2. 사물에 관한 조항은 법령과 불문법의 규칙 및 공공질서, 공공도덕에 기초한 제한, 의무 및 법적 원칙을 적절히 준수하면서 동물에 적용된다.
벨기에 동물은 감응력이 있고 생물학적 요구가 있다. 유형 사물과 관련된 조항은 동물과 공공질서를 보호하는 법률 및 규제 조항에 따라 동물에 적용된다.
포르투갈 동물은 감응력이 있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그 본성상 법의 보호를 받는다.
스페인 동물은 감응력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다. 재물과 물건에 적용되는 조항은 동물의 본성 그리고 동물보호를 위한 조항과 양립할 수 있을 때만 적용된다.
카탈루니아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재물에 관련한 규정은 동물의 본성에 따라 적용된다.
캐나다 퀘벡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감응력 있는 존재이며 생물학적 요구가 있다. 동물을 보호하는 특별법의 규정 외에도, 이 법 및 재산에 관한 다른 법의 조항이 동물에 적용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나아가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면 동물은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동물이 물건이 아니다'라는 법은 해외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습니다. 2009년 유럽연합(EU)의 리스본 조약을 계기로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민법을 개정해 동물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감응력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동물이 감응력 있는 존재인 만큼 이들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보호자의 의무 규정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최근 많은 국가들이 동물의 비물건성 선언을 넘어 동물을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규정해 법적 지위를 정의하고 있다"며 "우리도 물건이나 다른 생물과 동물을 구분하고, 동물을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로 인정하는 게 후속 입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합니다.

한민지 녹색기술센터 박사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면 그 물건의 지위에서 벗어난 이후 동물에게 부여되는 지위와 권리가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논의와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없는 민법개정은 선언적 조항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길 바랍니다. 나아가 실질적인 동물복지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논의하고, 민사집행법, 동물보호법 등 후속 입법조치를 마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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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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