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하늘 찌르는 '이복현'의 금융감독원

입력
2022.07.30 14:00
수정
2022.07.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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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의결 없어도, 검찰 수사 중이어도
금감원, 연이틀 검사 결과 발표 "이례적"
이복현 원장 취임 후 급격히 높아진 위상
그만큼 짊어질 감독 책임도 무거워져야

한국일보 7월 28일 자 1면

한국일보 7월 28일 자 1면

"우리은행, 700억 원 횡령 직원 무단결근 1년째 몰라", "가상화폐 거래소 거친 수상한 외환거래 4.1조 원"

이번 주 이런 내용의 기사를 못 보신 분은 거의 없을 것 같네요. 금융감독원이 최근 이틀 연속 발표한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으니까요. 해당 시중은행의 허술한 내부통제 역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수조 원대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빠져나와 은행을 거쳐 해외로 사라졌다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발표 내용 자체가 금감원이 던진 메시지의 전부는 아니었어요. 정말 충격적인 부분은 '금감원이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죠. 금감원에 출입한 지 겨우 2년 차인 기자가 봐도 그랬고, 20년 넘게 다닌 금감원 직원들도 같은 생각을 했답니다. "이복현 원장이 아니면 절대 발표 못 했다"고 말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4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남대문지점을 방문해 현장 의견을 경청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4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남대문지점을 방문해 현장 의견을 경청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금감원은 통상 제재가 완료될 때까지 검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거든요. 수개월이 지난 뒤 제재안이 최종 의결되고 나서야 공시를 올리는 게 그간 금감원의 소통방식이었죠. 물론 금감원이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시장에선 의혹과 억측이 확산되기도 했어요. 그럴 경우 금감원은 이따금 '반박자료'를 통해 필살기인 '보신기주'를 꺼내들었죠. "도에 중을 하여 시기 바란다"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주문이죠.

이 원장 취임 50일 차에 접어든 금감원은 일단 달라진 것 같습니다. 금융회사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이슈에 대해서는 비교적 투명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금융위원회가 아직 의결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눈치 보지 않아요. 앞으로 직원들의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국민의 알 권리는 확장될 것 같네요. 금감원 사상 첫 '검사 출신' 원장이 보여준 파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원장을 '추앙'하는 온라인 팬카페가 이유 없이 생긴 건 아닌가 봅니다.

이복현 미니 갤러리. 디시인사이드 캡처

이복현 미니 갤러리. 디시인사이드 캡처

금감원의 위상을 끌어올린 만큼 이 원장이 감당해야 할 감독책임 역시 더 무거워졌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발표 후 곧장 '금감원은 그간 뭐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게 그 방증이죠. 수년간 수차례 검사를 나갔던 만큼 금감원이 "몰랐다"는 변명은, 직원 횡령과 무단결근을 "몰랐다"는 은행 측의 입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달을 가리켜도 손가락부터 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정답은 이미 이 원장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지난달 7일 취임사에서 밝힌 일단을 볼게요. "규제가 불가피한 영역에 있어서는 합리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해 예측 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높아진 위상만큼이나, 달라진 금감원의 책임감도 기대해도 될까요.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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