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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데·화나 이글스' 비아냥에도…팬은 팀을 못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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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꼴찌를 응원하는 마음
하위권 맴도는 롯데 응원하던 팬들
KIA에 0:23 대패 충격 '서울 상경'
"야구 단디하라"롯데 본사 앞 시위
압도적 꼴찌 한화의 '보살 팬'들은
웃지 못할 실책 보면서 '허허'
그럼에도 팬들은 팀 떠나지 않아
16연패·세 시즌 연속 꼴찌도 괜찮으니
"지더라도 납득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최근 롯데그룹 본사가 위치한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트럭 시위가 열렸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노사 분규나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야구에 대한 것이었다. 요구사항의 요지는 이렇다. 단장과 감독의 퇴진 혹은 경질, 이대호 선수의 마지막 시즌답게 야구를 ‘단디’해줄 것, 더는 ‘꼴데’라는 멸칭으로 불리지 않게 좋은 성적을 내줄 것. 팬 커뮤니티나 야구단 게시판에서나 볼 법한 문구가 야구장도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보이니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이를 감수할 만큼 팬들의 울분이 큰 것일 텐데, 야구단이나 그룹이나 아니면 선수들이나 어떻게 이 사태를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다. 시위가 있던 날, 롯데는 두산에게 5대 6으로 졌다.
결정적 계기는 롯데가 KIA에 23대 0으로 진 게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이른 외출을 마치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여유로운 마음을 언제 해칠지 모르는 유해하기 그지없는) 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응원하는 팀이 점수를 차곡차곡 뽑아 나가더니 경기의 절반인 5회가 넘어가기 전 승패가 결정될 정도로 시시한 게임이 되었다. 긴장감은 의외의 방향으로 조성됐다. 어웨이 팀의 공격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다. 홈 팀의 투수는 선발은 물론 그 뒤에 나오는 선수들에게도 속절없이 안타와 홈런을 두들겨 맞았고, 타자는 타자대로 빈타에 허덕였다. 경기 중반 넘어 상대 팀의 젊은 선수가 호쾌한 홈런을 뿜어내자 급기야 홈 팬은 상대 편 선수와 팀의 이름을 연호하며 자조적 응원을 이어갔다. 그렇게 리그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의 경기가 완성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돈을 모아 서울에서 시위를 조직하다니, 조금은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구팬이라는 존재 자체가 유난함의 결정체인 걸 어떡하겠는가. 롯데그룹은 유통업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이지만,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오랜 기간 하위권을 전전했다. 마지막 우승은 1992년. MZ세대 대부분은 생애 내내 롯데의 우승을 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롯데의 성적을 나열해 당시 최하위인 ‘8’자가 많이 들어간 비밀번호가 만들어질 정도로 하위권을 전전했다. 가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은 있으나 우승권에 근접한 적은 없다. 선수단에 투자도 줄어드는 듯하고 젊은 선수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이쯤 나열하니 롯데 팬이 롯데를 응원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싶다.
그런 면에서 롯데 팬은 실로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다. 롯데 하면 사직야구장이고, 사직야구장 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다. 신나게 노래할 만한 상황을 별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팀인데도 그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노래를 특별히 사랑하는 가인(歌人)이라서 그렇겠는가?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를 하는 롯데 선수를 사랑하고, 그렇게 롯데 야구를 사랑하기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다. 야구팬의 노래를 잘 들어보라. 십중팔구 원래 가사를 개사해 팀 이름이나 선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그거 아닌 걸 알면서도 ‘최강’이라 그러고, 분명히 지고 있는데도 ‘무적’이라고 그런다. 이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이 사랑은 비단 롯데뿐만 아니라 많은 야구팬에게서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발견된다. 이 사랑은 팀이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더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나는 서정환 감독이 KIA를 맡았을 때 가장 야구장에 많이 가고 중계도 매일 봤다. 기상천외한 갖가지 방식으로 기어코 지고야 마는 게임을 굳이 집중력을 다해 보고는 여기저기 성을 내다가, 이윽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으며 다음 경기를 갈망했다. 물론 다음 경기도 그들은 지기 일쑤였지만. 다음번 사랑은 직전 시즌 우승팀이 16연패를 달성(?)한 2010년에 왔다. 13번째인가 14번째 패배에 나는 치킨집에서 현실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는데… 동행들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깔깔거렸고 나는 내 사랑을 이해 못 해주는 세상에 소리쳤다. 야! 이, * ** *** ****아!(사랑이 많은 야구팬일수록 욕도 잘한다.)
어쩌다 보니 롯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 분야의 절대 강자는 한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롯데가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연패를 거듭하며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전반기 막판에는 연승을 달렸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 뭔가 일을 내보자는 상승 곡선이 있었다.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 상대가 한화였다는 점에서 그건 과도한 희망 회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에서 롯데는 한화를 상대로 세 경기 모두 쓸어 담았다. 7월 28일을 기준으로 한화는 1위 SSG에 34게임이 뒤진 10위이고,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 KIA에는 20게임 뒤처졌으며 순위표 바로 위인 9위 NC와도 9.5게임 차가 있는 압도적 꼴찌다. 승률은 30%를 아주 조금 넘는데, 이는 3경기로 이루어진 시리즈에서 전패를 면하고 1경기를 이길 확률인 33%가 되지 않는 수치다.
야구는 일주일에 6번 게임을 하고, 1년 중 거의 8개월간 진행된다. 바꿔 말해 한화 팬은 일주일에 나흘은 고통받아야 하며 그 기간이 몇 달씩은 된다는 것이다. 이게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면 한 달 내로 시원하게 끝나버릴 텐데 말이다. 혹자는 그들더러 ‘보살 팬’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보살이면 사리가 몇 개나 나올 지경이다. 오늘도 야구장에는 몸속에 사리를 키우는 보살님들이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탄식하고 좌절하다 가끔 환호한다. 27일 경기에서 한화는 역시 기록적인 연패로 사랑의 배신을 시전하고 있는 팀 삼성을 맞아 엎치락뒤치락하다 8회 어처구니없는 실책으로 결승점을 헌납했다. 유격수가 급하게 송구한 공은 전혀 급하지 않은 속도로 제법 느긋한 포물선을 그리며 야수의 글러브가 아닌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이런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마도 사회인 야구에서 봤을 테다. 이렇듯 지는 팀은 별의별 방법을 찾아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지고 이 팀을 사랑하는 팬은 우직한 방식으로 일편단심 사랑을 보낸다. 이런 불가해한 불균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 표현 중 하나가 트럭 시위겠지만…
지고 싶어서 지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 설렁설렁하는 플레이도 보이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실책이 나오지만, 정말로 가끔 음주운전을 하거나 도박을 하거나 승부 조작에 가담한 선수도 있었지만… 정녕 지고 싶어서 지겠는가? 반대로 말하자면 팬들도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건 또 아니다. 롯데 팬이라면 트럭 시위를 할지언정 가까운 연고지의 NC나 현재 1위를 질주하고 있는 SSG로 팀을 갈아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고난 피부색처럼 태어나 보니 부산이나 대전이나 광주 출신이고, 태어나 보니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들의 팬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다 보니 저들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고, 숱한 경기로 그들과 가족인 듯 친구인 듯 친근하고 밀접해져 버렸고… 이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인류는 이를 일컬어 보통 ‘운명’이라 부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클럽 선덜랜드의 이야기다. 근데 왜 ‘죽어도’인가. 다큐멘터리는 2부리그에서 전전긍긍하는 팀의 속사정에 카메라를 비춘다. 그들은 이기기보다는 거의 지고, 운도 실력도 없는데 유일하게 팬은 있다. 그들이 맨체스터 시티나 리버풀 아니 차라리 토트넘이라도 응원하면 ‘죽어도’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한 팀의 한번 팬은 곧 죽어도 그 팀의 영원한 팬이다. 그것이 팀 스포츠 리그의 기쁨이자 슬픔일 것이다. 그러니까 구단들이여, 그리고 선수들이여, 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납득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23대 0, 16연패, 세 시즌 연속 최하위… 같은 기쁨을 소거한 슬픔과 안녕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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