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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한 남자’ 박해일, 이순신 장군에 어울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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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시사회 뒤풀이에서 인사 나눈 사이 정도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했다는데 섭섭한 말이죠. 봉준호 감독이나 송강호씨랑 술자리에서 자주 어울렸고… 여러 번 같이 일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처음 협업한 배우 박해일과의 친소관계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나는 절친이라 생각하는데 나와 거리가 좀 있다고 말하면 서운하다’는 의미다.
이틀 뒤 대면한 박해일의 말에서는 온도 차가 느껴졌다. “시사회 뒤풀이에서 항상 인사드리고 안부 묻는 사이였죠.” ‘자주 뵈었으나 가까운 사이라고 하기엔 좀 먼 분’이라는 표현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헤어질 결심’의 엇갈린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은 일치할 수 없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박해일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유력인사를 한 번 만나고도 죽고 못 살 관계를 10년 넘게 유지해온 것처럼 떠벌리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곤 한다. 박해일은 그러기를 경계하는 사람인 듯했다.
주변에 쉬 물들지 않고 곁을 잘 내주지 않을 듯한 박해일의 성격을 10여 년 전 감지한 적이 있다. 전주영화제를 찾았을 때다. 개막일 영화제 주요 관계자가 있는 술자리를 찾았더니 박해일이 있었다. 허름한 ‘가맥(가게 맥주의 준말로 전북 전주시 특유의 서민형 주점)’이었다.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쓴 박해일의 얼굴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자 그는 파안하며 반가워했다. 그는 자주 밖을 나가 주변을 맴돌았다.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싶은 듯했다. 그 후 몇 개월 뒤 다른 영화제에서 그를 만났다. 기억하지 못 하는 듯해서 새삼스레 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그는 “알고 있죠”라고 말했다. 경박하지 않게, 예의를 지키면서 배우와 기자 사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뻣뻣했으나 불쾌하지 않았다.
박해일은 영화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출연작 목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데뷔한 이래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며 여러 역할을 선보였다. ‘괴물’(2006)과 ‘최종병기 활’(2011) 같은 대작에 출연하면서도 ‘짐승의 시간’(2011)과 ‘경주’(2014), ‘필름시대의 사랑’(2015),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등 독립영화에도 참여했다. 흥행될 만한 상업영화에만 출연하거나 이미지 변신 또는 슬럼프 탈출을 위해 독립영화에 모습을 잠깐 비추는 여느 스타 배우와는 다른 이력이다. 20년 넘게 활동하며 TV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은 점(단역이나 단편 드라마는 제외)도 눈 여겨볼 대목이다.
박찬욱 감독은 스웨덴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주인공처럼 예의 바르고 정중한 형사를 떠올리며 ‘헤어질 결심’을 구상했다고 한다. “무해하고 깨끗해 보이면서도 엉뚱하고 독특한 사고방식을 지닌 듯한” 박해일이 결국 주인공 해준으로 캐스팅됐다. 해준이 사건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며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을 매달고 바위산에 오를 때, 경찰서 신문실에 비싼 스시를 배달 주문해 용의자 서래(탕웨이)와 함께 먹을 때 박 감독의 의도는 스크린에 제대로 구현된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꼿꼿해서” 좋다고 말한다.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생각하는 해준의 욕망이 담겨있다. ‘꼿꼿’은 27일 개봉한 대작 ‘한산: 용의 출현’ 속 이순신(박해일)을 떠올리게 한다. ‘한산’ 속 이순신은 지나치다 싶게 말이 없다. 박해일은 연기라고 할만한 동작과 대사를 자주 선보이지 못한다. “(함포를) 발포하라” 정도만 기억에 남을 정도다. 스토리보다는 스펙터클에 방점을 찍으려는 김한민 감독의 연출 의도 때문이리라. 배우로서는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은 정중동의 연기로 바위 같은 인상을 스크린에 심는다. ‘명량’(2014)의 이순신(최민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헤어질 결심’ 속 해준의 대사) 연기라면, ‘한산’의 이순신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연기라 할 수 있다. 꼿꼿한 남자 이미지가 강한 박해일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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