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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도 반도체처럼 포효하자

입력
2022.08.0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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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학 평가순위는 전 국민을 키 순으로 줄 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키가 커서 편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은데, 이를 무시한 채 편의적으로 우열을 정하는 것에 문제는 없는가. 사람의 키는 사람의 인지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과는 무관한데 말이다. 키는 작지만 체격이 단단하고, 탁월한 리더십과 문제해결 능력으로 무장한 위인들이 역사 속에 많음을 잘 알면서 말이다.

대표적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QS는 대학의 평판(40%), 학생 수 대비 교수 수(20%), 발간한 논문의 피인용 수(20%), 기업의 평판(10%), 외국인 교원과 유학생 수(10%)를 반영해서 평가한다. 또 다른 평가기관인 THE는 교육 여건(30%), 연구실적(30%), 논문 피인용 수(30%), 글로벌화와 산학협력(10%)을 반영해 전 세계 대학을 줄 세운다. 두 기관의 평가 기준이 같지 않은 것은 대학이라는 평가 대상의 다중적 가치 때문이다.

대학의 외부 평판, 연구 경쟁력, 글로벌화 모두 선발 주자인 근대 서구 대학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표준이다. 서구 강대국의, 역사가 오래된 유수 대학이 글로벌 평가에서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힘의 중심이 철저히 서구의 선도대학에 있는데, 우리는 이들이 표준에 의해 일방적 줄 세우기를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대학평가 시스템의 타당성 논쟁을 떠나서, 우리 대학들의 최근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의 선전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2008년 QS 평가에서 세계 100대 대학에 단 두 개 대학이 명함을 내밀었는데, 2022년 평가에서는 여섯 개 대학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4년간 우리 대학들의 선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경이롭다. 성과는 분명히 컸지만, 따라잡기의 소모적 경쟁을 하며 진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우리 대학은 서구 대학에 대한 강력한 추격자로서의 위상을 넘어 글로벌 대학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게임 체인저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산업이 글로벌 반도체, 자동차, 문화콘텐츠 시장을 압도하는 이 시기에 이제 우리 대학도 글로벌 대학의 표준을 선도하는 비전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작고한 문화연구학자 빌 레딩스는 그의 유고집 ‘대학의 폐허’에서 ‘수월성’ 논리의 장벽에 갇힌 근대 대학의 초일류주의가 대학의 자유 정신과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하고, 대학이 사회에 진정으로 기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잊게 했다고 비판했다. 수월성이라는 다소 막연한 표준에 의한 대학의 줄 세우기 경쟁이 단선적 발전을 지향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역기능도 컸다는 얘기다. 대학이 비전과 목적을 잃은 채 망망대해에서 목적지 없이 힘들게 노를 저어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문제제기다.

대학의 새로운 표준은 ‘사회적 영향력’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려운 문제에 얼마나 담대히 도전하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대학 평가의 표준이 될 것이다. 팬데믹, 환경, 에너지 위기로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학이 지속가능한 환경(Environment), 포용적 사회(Society), 투명하고 정의로운 지배구조(Governance)를 선도하는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 강의실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시험 답안지를 채점해 학점을 주고, 논문 심사를 거쳐 학위를 주는 전통적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가 봉착한 어려운 문제에 담대히 도전해야 한다. 그런 다음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대학의 표준을 선점하고, 글로벌 사회를 향해 포효했으면 한다. 새로운 문제해결 게임의 룰과 경기력의 표준을 만들어 '초일류 경쟁'을 넘어선 다음 시대의 새로운 경쟁을 준비해야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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