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딸 30세 남자와 결혼...탈레반 집권 1년 "여성의 모든 것 앗아갔지만, 침묵 않겠다"

입력
2022.07.27 18:03
앰네스티 탈레반 집권 여성 보고서
교육, 노동, 자유 등 영역서 권리 침해
탄압 맞선 여성들 시위…"침묵 않겠다"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어깨에 소총을 멘 한 탈레반 병사가 여성 모델들의 사진이 훼손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중부 지역 출신의 코르시드(35)는 지난해 9월 '신붓값'을 받고 13세가 된 딸을 이웃의 30세 남성과 결혼시켰다. 딸의 신붓값은 단 670달러(약 88만 원). 결혼으로 "이제는 딸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안심했다는 코르시드는 다른 10세 딸도 결혼을 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의 둘째 딸은 5학년까지 학교에 다녔으나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여성 중등교육을 중단하자 집에 머무르고 있다. 코르시드는 "딸이 더 공부해서 가족을 부양하길 바란다"라면서도 "학교가 열리지 않는다면 딸을 결혼시켜야만 한다"라고 국제앰네스티에 전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27일 공개한 '천천히 찾아오는 죽음: 탈레반 집권하의 여성' 보고서에서 아프간 집권 세력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앞세워 여성인권 탄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재집권 직후에는 '히잡만 쓰면 여성의 학업과 사회활동이 가능하다'면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화책을 펼쳤으나 올해 들어서 이슬람 질서 강화에 힘쓰는 모양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단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아프간 34개 주 중 20개주에 거주하는 14~74세 사이의 아프간 여성 90명과 소녀 11명을 인터뷰했다. 또 탈레반이 운영하는 구금시설의 전·현직 직원,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아프간 전문가 및 언론인 등도 만났다. 보고서는 "탈레반은 1년도 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과 소녀의 권리를 말살시켰다"라고 했다. 교육과 노동, 자유 등 모든 영역에서 아프간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이다.

박탈된 여자아이들의 '미래'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중서부 헤라트의 한 학교 교실에서 히잡을 쓴 여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탈레반은 "여성이 히잡을 쓰면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며 유화책을 내놨으나 이후 이를 전면 부정하고 여성인권 탄압을 시작했다. 헤라트=로이터 연합뉴스


"여자아이들은 그저 미래를 원할 뿐인데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주의 고등학교 교사 파티마(25)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학생들의 상황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에서는 여성 중등교육이 중단됐다. 탈레반은 새 학기 시작일인 올해 3월 23일 여학생 등교 재개를 약속했으나, 복장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돌연 취소했다. 탈레반 집권 이전인 2018년 중등교육을 받는 여성의 비율은 약 40%에 달했다. 툰두즈주의 사립 고등학교 교사 순불(21)은 "이전에는 우리 반에 40~50명의 여학생이 있었지만 지금은 5명도 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라고 했다.

여성의 대학 교육은 허용됐으나 남성과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없으며 별도 출입문을 사용해야 한다. 일부 전공은 지원할 수 없고, 복장 규정도 생겼다. 카불대 학생인 브리슈나(21)는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국가의 전통 복식)가 바닥에서 4㎝ 이상 떨어졌다는 이유로 여학생을 대학 건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교사나 학생을 향한 탈레반의 폭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 이팻(22)과 남동생 나비드(16)는 영어 수업을 듣던 중 탈레반에게 '이교도의 언어를 배운다'라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한 교사는 남녀가 어울리는 체육수업을 진행했다고 재판에 처해지기도 했다.

여학생의 '무기한 등교 연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열린 아프가니스탄의 성직자·부족 원로 등의 지도자 회의에서 모두 남성인 참석자 4,500명 중 여학생 중등교육 재개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단 2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금지령에도 일종의 '지하 학교(underground schools)'를 열어 교육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마흐람(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이 어려운 여성들은 학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등교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성들의 '오늘'도 볼모로 잡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지난해 8월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복장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이 장을 보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 집권 초기 여성은 장거리 여행 시에만 마흐람이 필요했지만 올해 5월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성은 집에 머무르라'는 방침이 생기면서 외출이 어려워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눈 부위만 망사로 뚫어 놓은 '부르카' 착용도 의무화됐다. 이전에도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 형태의 히잡은 있었지만 부르카는 가장 보수적인 여성 복장이다. 자이납(27)은 "평생 히잡을 착용했지만 얼굴까지 가리고 싶지는 않다"라면서 "이제 숨을 쉴 수조차 없다"라고 전했다.

직업을 가진 소수 여성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일하는 여성의 직장에 탈레반이 부정기적으로 방문, 복장과 옷을 감시한다. 카불에 있는 병원 간호사 샤브남(25)은 “간호복을 입지 말라고 해서 거부했더니 폭력을 휘둘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탈레반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이를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여성은 남성 환자를 돌볼 수 없다거나 여성 기자는 정부 자료에 접근권이 제한되는 등 실질적으로 근무를 계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2월 발표된 세계식량계획(WFP)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아프간의 여성가장 가구의 거의 100%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성폭력이나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호소나 쉼터가 문을 닫으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감옥에 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보호소 직원과 피해자가 함께 거리에 나앉기도 했다고 앰네스티는 전했다. 임신 9개월 차의 한 아프간 여성은 "남편의 폭행을 피해 보호소에 있었지만 이제는 갈 곳이 없다"라고 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이런 제도적 차별에 맞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탈레반 정부는 5월 "지난 9개월 동안 단 한 명의 여성도 정치적이거나 정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지 않았다"라고 밝혔으나 국제앰네스티는 최소 5명 이상의 여성이 정치범으로 투옥됐다고 본다. 실제로 체포됐던 한 여성 시위자는 "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며 '전부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지난해 8월 탈레반을 향해 여성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카불=AP 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는 1일 보고서의 내용을 아미르 칸 무타키 외무부 장관 등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탈레반은 수백만 여성들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박탈하고, 이들을 제도적 차별 속에 빠뜨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프간 여성들을 포기하는 일이며 전 세계의 인권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 통제가 강화되면서 아프간에서는 여성의 시위를 보도하는 일마저 금지됐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달에도 아프간 여성 12명이 탈레반을 향해 여성의 등교와 복직을 허용해달라는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기하지 않는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아프간의 16세 학생 소라야는 국제앰네스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레반은 나의 꿈과 희망,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프간 여성들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탈레반은 여성과 소녀들이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지 않고, 피해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갈 겁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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