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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는 죄가 없다… 주인공 가려진 '색, 계'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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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1,000년 전만 해도 그저 어촌에 불과했다. 19세기 말엽 서구 열강의 침탈로 모욕을 당했으며 정치 외교의 각축장이었다. 21세에 이르러 중국의 경제 수도이자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복합된 도시답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다. 흥미로운 역사 문화도 많다. 초호화판 도심도 있지만 외곽으로 가면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상하이를 모두 4편으로 나눠 발품 기행을 떠난다.
탕웨이가 출연한 ‘헤어질 결심’이 개봉됐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나름 인기몰이 중이다. 배우 탕웨이는 2007년 우리 앞에 등장했다. 영화 ‘색, 계’를 통해서다. 포스터를 보면 ‘욕망, 그 위험한 색(色)’과 ‘신중, 그 잔인한 계(戒)’라 적혀 있다. 조금 난해하다. 한마디로 미인계다.
병법서 ‘삼십육계’는 성공 계책인데 영화는 실패로 끝난다. 심지어 체포돼 사형당한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상하이 푸둥공항 서남쪽 30분 거리에 영화 촬영지인 신창고진(新場古鎮)이 있다. 시내에서 지하철 16호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남쪽 입구에 삼세이품(三世二品) 석패방이 보인다. 명나라 만력제 시대 태상시 장관을 역임한 주국성이 건축했다. 황실 제례를 총괄하던 관청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쳐 2품 벼슬을 하사 받은 은총을 기념했다. 고향에 성은을 세우는 일은 봉건시대 최고의 덕목이자 자랑이다.
대학사를 역임한 서광계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동시대에 관직을 3대째 이은 가문이 외곽에 있었다니 놀랍다. 구열명경(九列名卿)이라 당당하게 새겼다. 구열은 행정기관의 수장을 총칭하는 말이다. 구경(九卿)의 다른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색, 계’와 만난다. 조금 이상하다. 문짝에 가려진 채 얼굴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2013년 이후 세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똑같다. 건물 끝 구석에도 포스터가 겨우 보일 정도로 숨었다.
개봉 당시 인기가 많았고 후유증이 좀 있었다. 실화를 옮긴 장아이링의 소설이 원작이다. 일제강점기인데 실패한 미인계를 다루다니? 정사 장면은 노출이 심해 파격이었다. ‘무삭제판’이 어둠의 경로로 대륙을 휩쓸었다. 친일파 제거를 위해 스파이가 된 탕웨이는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배우가 무슨 죄인가? 항저우 출신 탕웨이는 주소지를 홍콩으로 옮겼다.
가게가 줄줄이 이어진다. 제일루(第一樓) 찻집이 있다. 창문 안쪽에 걸린 액자가 촬영 장소라고 알려준다. 친일파에게 접근해 ‘몸으로’ 신뢰를 쌓은 탕웨이가 선배를 만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탕웨이는 항일운동을 하는 선배의 권유로 스파이가 된다. 선배는 하루빨리 친일파 제거 임무를 마치길 원한다. 비밀스러운 아지트 현장이 바로 이 찻집이다.
연모하는 선배와의 만남이다. 어느새 친일파와 몇 번의 성관계를 가졌고 헤아리기 힘든 속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애절하게 흔들리는 눈빛은 영화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문짝에 가리고 구석에 걸린 포스터와 액자 두 장만이 흔적으로 남았다. 지금도 여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찻집 옆에 도랑이 흐르고 홍복교(洪福橋)가 봉긋하다. 12세기 초 남송 시대에 조성됐으니 800년의 역사를 지녔다. 한때 쑤저우와 우열을 겨룰 정도로 번성했다. 소금 저장소인 염장(鹽場) 때문이다. 새롭게(新) 만들어진 염장(場)이었다. 원나라 시대 소금을 운반하는 관청도 있었다. 물길이 있어 소금 운송이 쉬웠기에 자연스레 번창했다. 수향의 풍모를 지녔으며 다리도 많다.
홍복교를 넘어가면 간식 파는 골목이 이어진다. 찻집과 식당, 옛날 가옥도 많다. 어쨌든 영화 덕분에 유명해져 관광객도 꽤 찾는 편이다. 취두부가 골목을 사로잡고 있다. 삭힌 냄새가 예사롭지 않은 두부는 지역마다 향과 맛이 다르다. 동네 브랜드인 장싼(蒋三) 가게가 성황인데 냄새가 아주 고약한 편은 아니다.
싼황지(三黃雞) 요리도 판다. 깃털, 다리, 부리가 황색인 암탉을 말한다. 그런 닭이 있다니 신기하다. 곱게 삶아 그대로 간장에 찍어 먹는다. 100년 전통이라는 지탕더우푸화(雞湯豆腐花)도 있다. 닭과 두부가 골목을 주름잡고 있다.
배를 끓인 쉐리탕(雪梨湯)도 있다. 중국 배는 당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와인에 절여 먹고 꿀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봄에 피는 개자리 풀을 섞어 만든 찹쌀 과자인 차오터우빙(草頭餅)도 있다. 딱 봐도 씁쓸한 맛이다.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반짝거리는 단황러우쑹(蛋黄肉松)이 있다. 찹쌀 반죽 안에 고기와 달걀노른자를 넣어 만든다. 먹거리가 많아 고진을 찾는 재미가 있다.
골목을 걷다가 1부터 9까지 숫자를 적은 문짝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쳤는데 몇 걸음 걷다 생각해보니 지혜로운 낙서다. 고르게 판자를 잘랐다 해도 모두 똑같을 수 없다. 순서에 맞춰 끼워야 한다.
문짝이 9개인 집이 많다. 발채루(潑彩樓)도 그중 하나다. 숫자를 대신하고 있다. 깨알같이 휘갈겨 써서 도통 무슨 글자인지 알기 힘들다. 약간의 오기가 발동했다. 문짝 아래 바짝 붙어 꼬부랑글자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모두 당시(唐詩)다.
다행스럽게도 시인 이름이 병기돼 있다. 오른쪽 끝에 왕지환이 지은 양주사(涼州詞)를 적었다. 이어서 이백의 망노산폭포(望廬山瀑布), 맹호연의 춘효(春曉), 두보의 절구(絕句)다. 다섯 번째 한가운데에는 왕한이 지은 양주사(涼州詞)다. 이백의 망노산폭포 둘째 수와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 나란하다. 다시 왕지환의 등관작루(登鸛雀樓)에 이어 마지막은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1시간이나 고개를 쳐들고 난제를 풀었더니 숨이 차다. 머리는 아픈데 나름 재미도 있다. 언뜻언뜻 감동도 조금 우러난다. 문짝에 적은 당시 9수가 오래 기억될 듯하다.
고즈넉한 신창고진은 번잡한 시내와 너무 다르다. 경제 수도인 글로벌 도시와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 상하이에도 수향이 꽤 많다. 해방 전 암울했던 시대에는 누구나 죽음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가 영화가 됐다. 촬영 현장의 문짝에 가려 있지만 무명이던 탕웨이는 어느덧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지하철 타고 가서 한나절 즐기기 좋은 수향이다. 상하이의 숨은 명소다.
상하이 지하철 1, 2, 8호선이 만나는 인민광장역으로 간다. 시 정부와 박물관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영토의 절반에 이른다는 ‘반벽강산(半壁江山)’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상하이박물관이다. 유물 가짓수로 따지면 시안의 산시역사박물관(170만 건)과 베이징의 국가박물관(140만 건)에 이어 3번째다. 100만 건이 조금 넘는다.
세계 박물관의 날인 5월 18일 즈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산재한 박물관이 무려 6,183개에 이른다. 국가1급 박물관만 204개다. 소장품의 양과 질에서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버금가는 박물관도 100여 개다. ‘영토의 절반’이라 과장하는 박물관 몇 개를 합치면 지구도 덮을 기세다.
‘상하이박물관’ 간판은 건국 후 첫 시장인 천이가 썼다. 1952년에 개장했다. 돈을 빨아들이듯 사방의 유물을 모았다. 10개 부문으로 나눠 상설 전시장을 운영한다. 하루 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꼼꼼하게 보려면 며칠 투자해도 좋다.
신분증만 있으면 중국의 박물관은 대부분 무료다. 청동기, 도자기, 조소, 서예, 옥새, 회화, 가구, 옥기, 화폐, 소수민족으로 나뉜다. 국가문물국은 해외 전시를 금지하는 국보급 유물을 특별히 관리한다. 1,2,3급으로 나눠 보존하고 있다. 박물관의 위상은 가치 높은 문물의 소장 여부와 관련이 깊다. 2021년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국 고대 청동기’ 전시회를 열었다. 청동기 전시실은 상하이박물관의 자랑이다.
청동기 전시실에서 대극정(大克鼎)의 인기가 단연 으뜸이다. 기원전 10세기 서주 시대 청동 솥으로 해외 반출 금지 문물이다. 청나라 광서제 시대인 1890년 시안 서쪽 푸펑에 위치한 런촌에서 출토됐다.
공부상서를 역임한 반조민이 구입하자마자 사망했다. 동생 반조년이 형의 영구와 함께 쑤저우 고향집으로 보냈다. 민국 초기 미국인이 거액을 들고 왔으나 단칼에 거절했다. 국민당도 빼앗으려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1937년 일제가 쑤저우를 침공하자 집안일을 맡고 있던 판다위 여사가 뒷방에 숨겼다. 일본군이 하루 7차례나 찾아왔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해방 후 상하이박물관에 기증했다. 안내문에 기증자 이름이 기록돼 있다.
하나라 우왕이 제작했다는 구정(九鼎)은 전설이다. 왕조의 위상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천자는 구정, 제후는 칠정’이며 ‘대부는 오정, 관리는 삼정’이었다. 그만큼 많이 전래된다.
여느 솥과 비교해 국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솥이라고 다 같은 솥이 아니다. 진면목은 솥 안쪽에 새겨진 28행 290자에 있다. 천자가 조부의 업적을 인정해 극을 발탁해 중요한 관직을 하사했다. 이에 솥을 주조해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다.
서주 시대 사회 제도를 연구하는데 학술적 가치가 높다. 청동기가 셀 수 없이 많아도 남다른 면모를 지닌 유물은 많지 않다.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대우정(大盂鼎),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모공정(毛公鼎)과 함께 청동기 삼보(三寶)라 불린다.
술 담는 그릇으로 제사 때 사용하는 희존(犧尊)이 보인다. 소의 형상으로 청동기 특유의 수면문(獸面紋)이 새겨져 있다. 1923년에 항산 인근 리위촌의 한 사찰에서 청동기가 무수히 발굴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대부분 해외로 흘러갔고 남아있는 유물 중 하나다.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 말기에 제작됐다.
윗부분의 구멍 3개를 막던 덮개가 사라졌고 꼬리 부분도 떨어졌다. 소처럼 굳건하게 땅을 지키며 도망가지 않은 이유인지 모른다. 코뚜레나 눈동자, 굳센 다리까지 조형미가 수준 높다. ‘주례’에 따르면 술 그릇은 크게 6가지 종류가 있다. 고대 제례에선 양이 아닌 소가 희생양의 대명사이자 우두머리였다. 우존(牛尊)이 아니라 희존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여기저기 작(爵), 고(觚), 가(斝), 굉(觥)이 등장한다. 이름과 생김새, 문양도 다른데 용도는 하나다. 술잔이다. 잔이지만 제례에 놓이는 그릇으로도 사용된다. 잔과 병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술병인 존(尊), 뢰(罍), 유(卣), 치(觶), 화(盉), 호(壺)도 있다.
고대인은 너무 세심했다. 술 담는 잔이고 병이니 취할 정도로 헷갈린다. 영어로는 10여 가지를 모조리 ‘Wine Vessel’이라 적었다. 서양인은 정말 미칠 지도 모른다. 몸통이 통통하고 다리가 셋으로 수면문이 새겨진 가(斝)가 있다. 네모난 주둥이와 볼록한 몸통의 뢰(罍)도 보인다.
덮개와 손잡이가 있는 유(卣)도 있다. 베이징 고궁이 소장했던 유물로 추정되는 술병이다. 1959년에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인 류리창에서 구매했다. 사슴의 목과 토끼의 귀를 지니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뿔 뒤로 얇게 몸을 구부린 뱀과 등에 용 꼬리가 길게 새겨진 술잔도 있다. 덮개 끝에 소 머리가 있는 굉(觥)이다. 대부분 상나라 시대 청동기다. 술잔과 술병만으로 전시실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
물 담는 그릇도 있다. 춘추시대인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자중강반(子仲姜盤)이다. 상하이박물관의 보물 중 하나다. 높이가 18㎝이고 지름이 45㎝인 대야다. 손이나 얼굴을 씻을 때 사용했는데 무게가 12.4㎏으로 고정 세면대였다.
한가운데에 볏이 있는 물새가 귀엽게 앉아 있다. 볏이 없는 4마리 물새와 4마리 물고기가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다. 그 사이에 개구리가 앉아 있다. 4마리가 있었는데 하나는 어디론가 뛰어나가고 없다. 바닥에 4마리의 거북도 새겨져 있다. 예술 감성과 제작 기술이 시대를 뛰어넘는다.
바닥에는 6행의 32자가 적혀 있다. 길일을 맞아 부인인 자중강을 위해 제작했으며 장수를 기원하며 후손이 보물로 여겨 사용하라는 내용이다. 볼수록 탐이 나는 유물이다. 모형으로 만들어 집에 두면 꽤 근사할 듯하다.
덮개에 소가 우르르 몰려 있는 청동기가 있다. 모두 여덟 마리다. 가운데 큰 소를 중심으로 작은 소 일곱 마리가 쪼르르 붙어 있다. 몸통 양쪽 손잡이에 호랑이가 달라붙어 으르렁거리고 있다. 팔우저패기(八牛貯貝器)라 부른다.
1950년대 쿤밍에서 발굴될 당시 조개 화폐가 담겨 있었다. 마침 상하이박물관이 개관했고 윈난성박물관이 기증했다. 화폐가 보관된 저장소를 소가 힘껏 누르고 있고 호랑이는 호시탐탐 노리는 도둑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신기한 발상을 구현한 고대인의 기술력이 새삼 놀랍다.
상하이박물관 홈페이지에 독특한 추천 관람 동선이 있다. ‘친자노선(親子路線)’이라 한다. 별도의 전시실이 아니고 아이들을 위한 ‘동물원’ 노선이다. 여러 전시실에 있는 동물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청동기, 조소, 도자기, 옥새에도 붙어 있다. 개, 사자, 소, 호랑이, 양, 코끼리, 낙타, 말이 등장한다. 가끔 고대 신화의 맹수도 있다. 그야말로 박물관 속 동물원 유람이니 이이들과 함께 손잡고 가면 좋으리라. 동물 보러 가자고 하면 지루한 박물관도 흥미롭지 않을까?
청동기 전시실을 샅샅이 훑었다. 나머지 전시실도 나쁘지 않다. 기원전 고대인의 동물 세상을 훔쳐본 듯하다. 두루 다 살펴보느라 5시간이나 지난 줄 몰랐다. 점심도 거르고 오후 늦게까지 1층부터 4층까지 둘러보느라 혼이 쏙 빠진 듯하다. 그래도 박물관은 자주 가면 좋다는 생각이다. 바깥으로 나오니 인민광장에 고운 노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유물과 함께 보람찬 하루를 보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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