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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걷기에서 얻는 지적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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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는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 이방원과 인연이 깊다. 이방원에 분노한 태조 이성계가 화살을 쏘았지만, 참모의 조언을 들은 태종은 미리 설치한 큰 기둥 뒤에서 절을 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백성들은 현장에 있던 다리를 기둥에 맞고 떨어진 '화살이 꽂힌 다리'라는 의미로 ‘살곶이다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살곶이다리는 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긴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달 초 한참 무더운 날 이곳에서 성수동 답사를 시작했다. 살곶이다리에서부터 서울숲, 수도박물관, 성덕정터를 거쳐 수제화 거리를 통과하면서 핫플레이스로 등장한 숍과 공공시설들을 함께 둘러보는 시간이 되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가운데 계획한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장소를 둘러보았다. 마을을 둘러보고 그 역사와 스토리를 접하면서 그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만큼 재미있는 과정이다. 문서와 자료를 통해 마을의 기원과 변화과정을 살펴보게 된다. 정리된 내용을 토대로 현장을 둘러보면서 실제 모습과 변화 이전과 이후를 가늠해 봄으로써 과거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성수동은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강의 범람이 빈번하였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광나루로를 따라 뚝방이 형성되어 있다. 살곶이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이 뚝방길은 지금은 산책로가 되어 주민의 건강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로써 잠실 송파나루와 연결되는 나루터가 위치한다. 군사훈련지로 임금이 직접 나와 훈련을 관장하고 사냥도 즐기던 장소였다. 그래서 이곳에는 성덕정(지금은 천주교 성수성당)이 자리했었다. 임금님의 성은 덕분이라는 의미를 담는 성덕정은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도로명만 성덕정길로 남아있다.
현재의 서울숲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단장하였지만 그 전에는 경마장터였다. 말똥 냄새가 심하다 하여 민원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과천으로 경마장이 이전하면서 숲으로 조성되었다. 이 숲 안에는 수도박물관이 있다. 조선 말기 한성으로 최초의 수돗물을 공급해 주던 시설이 있었던 장소이다. 100년 전의 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우물물에 의존하던 생수의 삶이 처음으로 수도관을 통해 물을 공급받기 시작한 역사적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군사훈련을 위해 지어진 성덕정의 성과 수돗물의 수가 합쳐져 성수동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 이 마을 지명의 유래이다.
우리는 길을 따라 수제화 거리를 거닐었다. 성수동은 과거 국내 신발업체에 납품하던 신발공장들이 모여있었다. 가죽을 제공하고 신발을 만들어 브랜드 회사에 납품하던 장소였다. 그 자리에 수제화 거리가 조성되고 신발타운이 만들어졌다. 그 사이사이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팝업숍들이 들어서고 있다. 성수동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등장한 디올 매장은 인스타 명소로 각광을 받는가 하면 새로운 숍들이 계속 들어서면서 입면의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마지막 코스로 들른 곳은 대림창고와 성수연방이었다. 방직공장터를 예술가의 아트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킨 장소이다. 성수동은 과거의 낡은 것을 보전하면서 모던한 예술과 상업가치를 더해 재탄생시킨 장소이다. 그래서 신구가 조화되고 낡은 것이 결코 낡지 않은 신선함으로 재탄생하는 방식으로 낯설음과 재미를 주고 있다. 답사를 통해 마을을 알게 된다는 것의 지적 즐거움이 가족과 함께 하는 올여름 여행의 콘셉트가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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