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입력
2022.07.27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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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혐오의 바다에 빠져 떠밀려 가지 않기다. 정치의 가능성이란 바다로 함께 헤엄쳐 가자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참 쉽지 않은 요즘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 게시판에 '[7/23, 울산] 무너지는 벽체에 깔림, [7/23, 화성] 스키드로더에 깔림, [7/21, 부산] 레미콘 작업발판에서 떨어짐, [7/21, 산청] 작업 중 옹벽 아래로 떨어짐'과 같은 사망 속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걸 보면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여가부 폐지 로드맵 조속 마련 지시'라는 속보가 떴을 때 그렇다. 정부와 국회가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아닌, 자기들의 안위만을 위한 다툼을 하는 걸 볼 때 그렇다.

이렇듯 일상적으로 늘 마주치게 되는 정치혐오라는 바다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 정부가 들어선 지 3개월, 새 지방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떤가. 만족감이 있는가? 새 정부를 견제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야당은 어떤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으로서 기대감이 생기는가?

미안하지만 공허하다. 여당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야당이라도 믿음과 희망을 주어야 할 텐데, 그 어느 정당에서도 설렘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부, 이런 정당체계, 이런 정치 시스템을 2022년에 갖게 될 거라고 20년 전의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요즘 우리 정치로 인한 공허함의 깊이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이유다. 그동안 믿고 바라고 내 삶을 이끌어왔던 일들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알리는 것 같아 참 힘들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 사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좋은 정부, 좋은 정당, 좋은 정치 생태계를 우린 왜 갖지 못하나', '시민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 공동체를 우린 왜 갖지 못하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로 나아갈 힘을 우리는 왜 정치에서 발견하지 못하나' 이 질문들이 계속 날 괴롭히고 있다.

도망을 시도했다. 끈질기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질문보다 끈질기다. 부지런하다. 어딘가 숨어 있으려고 하면 먼저 와 앉아 있다. 그리고 말한다. '실패에 대한 복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라고 말이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당신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 당신에게 정치혐오라는 바다에서 정치의 가능성이라는 바다로 건너갈 수 있게 해줄 생존수영법을 알려주기 위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힘이 든다는 거 알고 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복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미래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왜 실패했나'라는 질문들이 밤낮으로 쫓아와 이야기하는데 더 이상 도망갈 방법이 없다. '정치, 너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어'라며 정치혐오의 바다에서 우리의 여정을 끝낼 수도 사실 없다.

실패를 제대로 마주하기로 했다. 지금의 공허함을 채울 방법이 이것뿐이라면 달리 방도가 없다. 결심했다.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그 과정이 어떠하든,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얼마나 힘이 들든 끝까지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이 질문을 통과하니 바로 그다음 질문이 찾아왔다. '제대로 복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참 독한 녀석들이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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