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전기료 보조금은 누가 책임지나

입력
2022.07.26 00:00
27면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 설치되어 있는 전기 계량기의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 설치되어 있는 전기 계량기의 모습. 뉴스1

석유와 전기는 우리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석유는 최종에너지 소비의 35.2%를 차지하며 주로 수송용 연료로 쓰인다. 석유화학의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그 비중은 훨씬 높다. 전기는 최종에너지 소비의 33.5%를 차지하며 경제 전반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용, 일반용, 주택용 전기의 비중이 각각 56%, 22%, 14%로 외국에 비해서 산업용은 높고 주택용은 현저히 낮은 특징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원인으로 세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 충격이 그대로 국내 석유류 가격에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 생활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석유류 가격은 시장논리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 정부는 1980년에 대한석유공사를 매각한 이후에 국내 정유 생산이나 유통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1997년 석유산업자유화 조치를 통하여 석유산업의 구조나 가격에 대한 규제를 대부분 철폐하였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석유류에 대한 세금과 보조금을 조정하는 것으로, 이미 수송용 연료에 적용되는 유류세를 법정 최고한도인 37%까지 인하하였고, 화물운송업계에 적용되는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에너지바우처 지급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은 모두 정부의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률이 정한 기준과 국회가 결정한 예산에 맞게 공개적 논의를 거쳐 투명하게 집행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를 100%까지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고, 정유회사에 횡재세를 부과하여 급증한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수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국회논의를 거쳐 법을 바꾸어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물론 유류세 인하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지, 횡재세가 정당한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정유회사들이 담합으로 석유류 가격을 높게 유지한다는 의심이 있으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합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처럼 석유류 가격에 대한 정부 대책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결정되고 집행되는 반면에 전기요금은 이런 과정들이 모두 생략되고 요금 결정권을 쥔 소수의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최근에 급등한 원가를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서 한전이 수십조 원의 적자를 쌓고 있고, 이 적자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메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낮은 전기료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전기료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인데, 그 혜택은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들에게 집중된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에 의하면 1분기에 전력다소비 50대 대기업이 낮은 전기료로 인하여 누린 혜택이 최소 1조8,0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한전 적자 7조8,000억 원의 상당 부분에 해당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지급하고,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공식적인 논의도 없이 막후에서 깜깜이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같은 내용의 보조금이 투명하게 논의된다고 하면 과연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그래서 국회를 쉽게 통과할 수 있을지 한번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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