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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가혹한 법 : 업무방해와 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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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자들에게 선배들이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단순히 약자라서 관심을 가지라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좀처럼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이야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처럼 알리고 싶은 사안을 일사불란하게 즉각적으로 홍보할 조직이 없고, 자신들 요구를 관철시킬 권력과 금력도 없다. 그래서 종종 막다른 상황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그랬다. 51일 동안 진행된 ‘선박 점거 농성’으로 조선소 기능이 멈췄다. 노조원 6명은 조선소 1독(dock) 원유운반선 탱크 20m 난간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유최안씨는 운반선 탱크 바닥에 만든 가로ㆍ세로ㆍ높이 1m 크기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는 ‘옥쇄투쟁’을 했다.
‘떼쓰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제서야 노동자들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지점은 그들이 알리고 싶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저임금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 등 조선업체 하청 노동자의 현실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대신 과격한 투쟁 방식과 농성으로 인한 막대한 회사 손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연히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덧씌워졌다. 그래도 그들은 언론에 섭섭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최안씨는 협상 타결로 철제 구조물에서 나오자 “이렇게 관심을 받은 적이 처음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경제적 빈곤 상태와 불합리한 하청 구조가 제대로 알려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투쟁을 끝낸 그들 앞에는 가혹한 법이 기다렸다. 법과 원칙에 유달리 집착하는 현 정부는 ‘업무방해’와 ‘배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와 사측은 조선소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했으니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민사소송도 병행하겠다고 했다.
업무방해죄와 배임죄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남용되는 ‘갈라파고스법’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다. 경영진 쪽에서도 남용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은행 신입사원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채용비리 사건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이쯤되면 기업들 민원을 받아 정부가 폐지를 검토할 법도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없다. 노동자를 옥죌 수 있는 만능열쇠를 쉽게 포기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배임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영 판단을 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대기업과 정치권이 수십 년 전부터 폐지를 주장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배임죄가 존재해야 파업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우조선 사태를 언급하며 며칠째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따지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행태만 문제 삼는다면 약자에게 더 큰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법과 원칙은 때로는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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