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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어와 옹알이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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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안전 안내문자가 온다. 최근 확진자 수가 늘었다더니 숫자가 확실히 커졌다. 지난 2년 반 동안 영화에서나 보던 일을 삶속에서 겪은 터라,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에 다들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가슴'이 된다. 그런데 질병에 대한 불안감만큼, 의학용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하는 낯선 말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다. 요즘 신문과 뉴스의 표제어는 '더블링'이다. 무슨 말인가 하여 인터넷 검색창에 쳐 봤는데, 두 글자만 넣으니 자동 완성으로 '더블링의 뜻, 더블링이란, 더블링 현상' 등이 뜬다. 이 말을 궁금해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소통력 떨어지는 말을 언론은 왜 당당하게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새로운 질병에 대응하면서 쏟아진 무수한 말이 있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은 국민이 '코호트격리, 부스터샷, 롱 코비드' 등을 뉴스로 듣는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살면 '위드 코로나', 우울감은 '코로나 블루', 분노 감정은 '코로나 레드'란다. 이런 소통이 바람직한 것인지 일반인들이 댓글을 달고 시민단체가 의견을 내면 그다음에야 비로소 '동일 집단 격리, 추가 접종, 코로나 감염 후유증' 등의 말이 더해진다. 언론에서는 전문용어를 옮긴 것일 뿐이고, 뒤를 이어 말풀이를 달았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반론한다.
살면서 새로운 사물이나 상태를 표현할 일은 늘 있고, 그럴 때면 누구나 고민하면서 적합한 말을 찾는다. 생각을 말과 글로 드러내야 하는 언론인은 그러한 능력이 일반인보다 더 탁월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한다. 두 배로 증가하는 것이 더블링(doubling)이면 '갑절'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연쇄 더블링'은 '몇 곱절'과 같은 말이다. '갑절'과 '곱절'처럼 이미 있는 말을 적절한 곳에 찾아 쓰기보다는, 아직 표기도 확정되지 않은 외국어에 우리 말소리를 입혀 써 놓고 전문용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언론인은 전문 집단과 대중을 이어주는 일을 하는데, 그 일이 전문가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단순 업무는 아니다. 특정한 현상을 이르는 특별한 말은 어디에나 있다. 그 말이 한 집단 안에서는 전문용어이지만, 전문어의 탈을 쓰고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는 없다. 설령 전문용어였을지라도 대중에게 전달될 때는 더 이상 전문용어가 아니어야 한다. 전문어와 옹알이는 소통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소통이 안 된다면 결과적으로 전문어는 옹알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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