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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가 아니라 '정훈'을 이해하려면...사회가 만들어 온 '비정상의 낙인'

입력
2022.07.22 04:30
수정
2022.07.22 09: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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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처드 그린커 '정상은 없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질환자로 나오는 캐릭터 김정훈의 모습. 드라마 화면 캡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질환자로 나오는 캐릭터 김정훈의 모습. 드라마 화면 캡처

20여 년 전 접했던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참 곤란한 책이었다. 배경 지식이 짧아 읽기 벅찼던 것은 둘째 치고, 정상인과 정신적 장애가 있는 비정상인의 구분은 근대 이후, 그러니까 자본주의 생산체제 등장과 맞물린 역사적·문화적 산물이라는 요지 자체가 수긍하기 어려웠다. 정신병자란 표현이 비하의 의미를 띤다 해도 지적 장애가 병리적 실체가 있는 질환으로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눈으로 쉽게 확인 가능한 게 아닌가. 대학 시절의 진보적 감수성으로 그들은 우리와 그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려 해도 마음 한편에선 치료가 필요한, 혹은 열등한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해소되지 못한 의문은 최근 신드롬급 인기를 끄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 변호사 우영우가 비정상인이 아니라 우리와 조금 다른(드라마만 보면 더 월등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3화에 등장한 또 다른 자폐인 ‘정훈’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시청자들이 납득했을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변호사인 주인공이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기 위해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듣는 모습. ENA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변호사인 주인공이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기 위해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듣는 모습. ENA 제공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문화인류학자인 로이 리처드 그린커의 '정상은 없다'는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책이다. 극단적인 신경다양성 운동가라면 자폐스펙트럼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고 치료·교정조차 다양성을 부정하는 차별로 보겠지만 저자는 ‘장애’ 대신 ‘질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의학적 치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되, 다른 질병과 달리 정신질환에 항상 따라다니는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푸코가 선취했던 길을 따라 비정상의 낙인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는데, 조선시대 사도세자 사례도 등장해 흥미롭다. 이런 추적은 비정상 범주가 자본주의가 이상화한 노동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낙인이라는 점을 밝히는 작업이다. 또 다른 타깃은 정신의학의 ‘망가진 뇌’ 모델이다.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밝혀진 게 거의 없는데도 ‘망가진 뇌’로 보는 관점이 낙인 효과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비판과 함께 최근의 첨단기술 경제가 노동 환경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는 등 낙인을 해체해 온 성과를 토대로 긍정적 전망을 담아 비관적인 비판서의 틀을 벗어난다.

정상은 없다ㆍ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ㆍ정해영 옮김ㆍ메멘토 발행ㆍ599쪽ㆍ3만3,000원

정상은 없다ㆍ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ㆍ정해영 옮김ㆍ메멘토 발행ㆍ599쪽ㆍ3만3,000원

이런 성과 중 하나가 다양성을 함의하는 ‘스펙트럼’이 질병명에 공식 포함된 점이다. 정신 질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이 용어를 확대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자폐스펙트럼 질환’으로 바꾸면 정상인 누구라도 이 질환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정상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딸이 바로 자폐스펙트럼 질환자라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가 사회적 편견을 뚫고 온전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심경이 행간 곳곳에서 묻어난다. ‘우영우’ 드라마에 감동을 받은 이라면, 우영우가 아니라 정훈을 이해하기 위해 한걸음 더 디뎌 보는 것은 어떨까.

송용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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