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없어도 우경화 못 막아... 성과 연연 말고 국민 설득부터”

입력
2022.07.21 16: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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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의 질문]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이 18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세종연구소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아베 신조 전 총리 사후 한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독자 세력을 구축하기 힘들고 한일 관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이 18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세종연구소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아베 신조 전 총리 사후 한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독자 세력을 구축하기 힘들고 한일 관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양국 외교부 장관이 18일 4년 7개월 만에 만났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양국 관계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의 태도는 쌀쌀하다.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기대됐던 양국 정상회담은 3분 대화로 끝났고, 최근 외교장관 회담에서 보인 입장도 ‘한국의 노력을 지켜보겠다’는 정도다. 아베 사후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독자적 리더십을 형성하고 한국을 유화적으로 대할 것인가. 일본의 역사 인식은 멀어져만 가는데 한국은 어떤 원칙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하나.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을 18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만나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기시다 총리는 아베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한일 관계도 급진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에는 “대일 외교는 성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며 “한일 관계를 풀려면 외교보다 내정이 먼저다. 국민을 설득 못하는 일을 하려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여기에 모두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물론 선진국답지 않은 태도이지만, 이토록 관계가 악화한 데에는 국내 정치에 이용한 양국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는 것, 그리고 우리 국민 또한 이제는 선진국다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수정주의와 한국 강경론, 고착된 흐름”

-아베 전 총리 사망 직후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의석이 늘었고,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최근 60%대로 뛰어올랐다. 아베의 부재를 틈타 온건파인 기시다가 자기 세력을 키워 독자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일본 보수 본류를 이어간 것은 기시다파였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끈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총리로부터 이어져 왔다.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지키되 병무장을 주장하고 경제성장 중심 정책을 펴왔다. 자민당 정책의 핵심은 노인·청년에 돈이 돌아가게 하는 분배정책이며 그래서 정부가 빚더미에 앉았다. 이에 반대한 것이 기시 노부스케 즉 아베의 외할아버지로 보수 방류를 형성했다. 안보를 중시해 대등한 안보조약,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이를 아베가 이어받아 지금은 주류가 됐다. 국가적 도전에 대응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워낙 재정적자가 심하니 금융완화에 초점을 둔 아베노믹스를 들고나왔고, 정책 중심을 경제에서 안보로 전환했다. 아베는 경제를 활성화시키면 개헌도 지지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현실주의자였다. 실제로 경제 성과로 장기 집권이 가능해 보이자 2015년 안전보장법제를 국민 비판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 보수 우파로선 큰 업적이다. 자위대가 미군의 후방지원만 했던 것을 전세계로 범위를 풀었고 미일동맹이 전쟁까지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외교에서도 인도·태평양 개념을 주도하고 일본의 역할을 키웠다. 일본 국민에게 아베는 미완성의 안보체제를 극복하면서 외교 지평을 넓힌 지도자로 높이 평가되며, 경제가 추락하는 시점에 사망해 책임은 모면하게 됐다.

기시다가 자기 색깔을 내기는 힘들 것이다. 아베 시대를 거치며 역사수정주의적 인식과 한국에 대한 강경론은 확고한 흐름이 됐다. 한국과 협력해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약해지고, 인도·호주·동남아를 우군으로 삼으면 된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이 흐름은 아베 사망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 이유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 자민당 제4 파벌에 속한 기시다는 아베·아소·모테기 파벌과의 연합 속에서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지금은 아베 때와 달리 총리관저 중심이 아니라 자민당이 국정에 간여하는 체제라 파벌이 매우 중요하다. 조정형 인물인 기시다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자민당을 장악하기 힘들다. 앞으로 파벌 연합이 변동할 텐데 스가 요히시데 전 총리가 연구회를 발족하는 등 아베의 자리를 차지하려 벌써 움직이고 있다. 반(反) 기시다 파벌이 커지면 기시다의 한계는 분명하다. 파벌 역학에 따라선 식물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또 (자민당과 연립한) 공명당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기시다파는 공명당과의 파이프도 약하다. 둘째, 정책적으로도 어렵다. 엔저, 고물가 위기에 내세울 정책이 없다. 유가와 밀가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도다. 원래 기시다파는 분배정책 중심인데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66%에 이른 상황에서 계속 하기 어렵다. 소비세를 올리는 방법이 있지만 아베가 두 번이나 인상한 터에 또 올리면 정권 유지가 힘들 것이다. 국민 불만은 커질 조짐이다. 고물가로 실질임금이 13%나 떨어졌고, 엔저로 수입 물가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폭염에 에어컨도 못 트는 지경인데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려면 원전 비중을 현재 9%에서 25%로 올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득점이 쉽지 않다.”


“기시다 세력 구축 못해 우파 눈치 볼 것”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다음 날인 1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개헌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AP·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다음 날인 1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개헌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AP·뉴시스

-기시다 총리는 참의원 선거 후 “가능한 한 빨리 개헌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개헌이 실현될까. 선거 후 개헌에 찬성하는 참의원은 의석 3분의 2를 넘어 전보다 늘어났다. 반면 국민 여론은 ‘개헌을 서두를 필요 없다’ 58.4%, ‘서둘러야 한다’ 37.5%(교도통신 11~12일 조사)로 나타났는데.

“개헌은 어렵다. 기시다의 발언은 아베파를 달래고 우파를 결집시키려는 것이다. 아베가 개헌을 그렇게 주장하고도 못한 건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아베 사망으로 자민당 지지와 개헌 찬성 여론이 좀 높아진 게 그 정도다. 불붙이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국민 여론이 급속히 우경화할 것 같지도 않다. 국민들은 개헌 내용 중 자위대 명기(평화헌법의 ‘군대 불보유’를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기)보다 긴급사태 조항 신설(자연재해 등 긴급사태 시 국회 임기 연장 등 대응책 마련)에 더 관심이 많다. 정당 입장도 각론에서는 제각각이다. 자위대 명기에 대해 자민당 93%, 일본유신회 86%가 찬성하지만 공명당은 14%만 찬성한다(12일 아사히신문 조사). 만약 자위대 항목을 빼고 개헌을 하면 국민이 찬성할 수 있지만 자민당 우파의 반대로 국회 원안 만들기가 힘들 것이다. 이런 개헌이라면 우리도 뭐라 할 이유가 없다.”

-GDP의 2%로 국방예산 증액 등 아베가 주도했던 방위력 강화는 어떤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긴장을 낳을 이슈인데.

“방위비가 한국(GDP의 2.6%)보다는 많아야 하지 않냐는 말이 먹히기는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일본 방위에 손을 뗄 수 있다는 위기감, 대만을 둘러싼 미중 긴장 우려가 일본 국민에게 크다. 하지만 GDP 2%를 달성하려면 5년간 6조 엔 즉 매년 1조 엔씩 올려야 하는데 재원이 문제다. 정부 예산이 대략 100조 엔이고 그 중 45조 엔이 빚이다. 인구고령화로 복지예산은 늘고 있고 그 때문에 아베가 소비세를 올렸다. 방위비 인상은 엄청난 부담이고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가 나온다. 방위비를 증액해도 문제가 있다. 현행 헌법상 공격용 무기는 살 수 없고, 이지스함 같은 건 근무할 사람이 없어 자위대가 싫어한다. 기시다가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힘들다는 걸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일 큰 변화 없을 듯… 타협 안 될 것 대비해야”

-한일 관계도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겠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구체적 제안을 내지 않는 한 일본은 대화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정상회담 자체를 관계를 푼다는 의미로 본다. 예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베 전 총리의 악수를 외면하며 냉대해 국내 언론도 비판을 했었는데 최근 나토에서 정상끼리 3분 대화하고 성의를 다했다는 일본 측 태도도 대국다운 행동은 아니다. 다만 아베는 아예 대화를 안 했다면, 기시다는 대화는 하지만 한국 측 제안을 요구하고 있어 한국 정부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관계 경색의 계기였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현재 민관협의회가 구성돼 논의 중인데 결국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과 표명이 난제가 될 것 같다.

“한일 관계는 자존심 대결의 끝까지 가 있다. 그런데 한쪽을 굴복시켜 해결할 방법은 없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고 외교적 교섭은 교섭대로 하되 안 되는 건 역사에 남기는 것이 해법이다. 우선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해도 배상에 부족한 게 사실이니 한국 정부가 지급(대위변제)해야 할 것이다. 구상권 청구는 기금 조성 등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사죄·반성을 주장하는데 맞는 이야기지만 일본이 안 받아들일 것이다. 아베 이후 일본 정치권에선 ‘더 이상 사죄와 반성은 없다’는 인식이 공고하다. 기업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타결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과거 일본 총리들이 반성했던 역사를 직시하고 노력하라’는 정치적 선언을 통해 역사적 책임으로 남기는 것이다. 나중에 관계가 개선되면 또 사죄를 촉구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투명한 민관 소통 중요… 위안부 합의의 교훈”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맨 왼쪽)가 14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 2차 회의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맨 왼쪽)가 14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 2차 회의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사죄와 반성이 없다면 우리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 협상안에도 없는 유감 표명을 알아서 하겠나.

“일본은 사죄와 반성을 조건으로 건 협상안은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를 탈피해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방식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예컨대 정상회담에서 사과하는 방식은 안 한다. 국제무대 연설을 통해 ‘고노담화를 받아들이고 한국에 다대한 고통을 미친 역사를 유념하겠다’고 표명하는 정도라면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은 톱 다운 방식으로 해결할 의지를 언급했는데 이 문제야말로 피해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 아닌가.

“민관협의회 프로세스는 꼭 필요하다. 피해자단체를 포함한 민관협의회가 제안을 내고 쟁점을 논의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합의 때 피해자들과 불투명하게 비공개로 소통해 문제가 됐고,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 피해자와 전문가 집단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게 위안부 합의 번복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지금 민관협의체에 피해자 단체 하나만 빼고 다 들어와서 피해자 요구사항이 파악됐고 현실성, 법적 문제, 한일 관계를 논의 중이다.

나아가 확장된 과거사 청산 조치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문희상안 같은 기금 조성으로 광범위한 식민지배 피해 보상을 제안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배상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는 14명이지만 추가로 판결을 받을 피해자, 시효가 지나 제소 못한 이들, 한 번도 재판에서 승소 못한 군인 군속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정부가 식민지배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어루만져 주는 과정이 부족했다. 이번에 하자는 생각이다.”


“국민 설득 못할 일 일본에 하지 마라”

-지소미아와 수출 규제 문제도 있다.

“수출 규제는 복원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자는 마당에 일본이 안보를 이유로 한국을 못 믿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실질적으로 규제한 적도 없다. 그보다 현재적 의미가 큰 쟁점들이 많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출,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제한 등이다. 일본은 시장 개방을 확대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수산물 수입 제한은 상충한다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사도광산 등재는 안 될 것 같으나 그러면 한국 때문에 안 됐다는 후폭풍이 예상된다. 즉 강제징용 문제만 푼다고 끝이 아니다. 한일 양국이 경쟁 관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생긴다. 윤석열 정부가 목표로 삼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공동선언 이후 밀월 시기로의 회복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우군·협력자로 볼 것이냐 방해자·극복 대상으로 볼 것이냐는 인식을 정리해야 한다.”

박진(왼쪽)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이 18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 공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박진(왼쪽)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이 18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 공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정상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언급하는 등 너무 서두르며 구애하는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협상이 잘 될까.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자처하며 선제적 예방 외교를 주장하고 있다. 미중 경쟁 속에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면 대일 관계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전략적으로 대화를 통해 풀자는 접근은 맞다. 전술적으로 어떤 담론, 어떤 이슈로 대화를 이끌 거냐가 문제다. 이런 점에서 윤 정부가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정상회담, 군사협력, 지소미아 정상화 다 좋은데 국민을 생각하면서 푸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일인데, 기술적이어야 한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한미일 관계나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과 협력하고, 양자관계에서는 자존심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시급한 현안이라고 일본과 협력하는 것을 그냥 발표할 게 아니라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우리 안보에도 보험을 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걸 생략하니 국민이 오해하고 반발한다.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일 외교의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과거사 문제는 해결하는 게 아니라 관리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해결한답시고 타협하면 안 된다. 성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국내 정치에 이용한 정치인 책임 커”

-문재인·아베 정부에서 한일 관계가 더없이 악화한 데에는 양국 정부가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한 탓이 크다. 각각 반일·반한을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써먹었다.

“맞다. 한국만 말하자면 문 정부만의 잘못도 아니다. 일본의 불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불필요한 자극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카키 마사오’로 부른 것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아예 일본과 접촉을 회피했다. 3년 내내 냉대하다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갑작스레 했으니 국민이 납득하겠나. 합의 후라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모셔 설득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합의 번복 후 방치했다. 일본을 극복하겠다며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 그래놓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 지난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공식 합의’라니 4년동안 수출 규제 등으로 고통받은 국민은 뭔가. 한일 관계를 풀려면 외교를 할 게 아니라 내정을 해야 한다. 국민부터 설득해라. 설득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려 하지 마라.”

-양국의 국민 감정도 전에 없이 악화했다. 그러니 정부가 움직일 여지가 적고, 관계 개선이 더 어렵다.

“일본에는 역사수정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사죄와 반성을 안이하게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에는 일본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관계 개선이 어려운 이유다. 양국의 자존심 대결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 같다. 사실 그 배경에는 두 나라 국력의 역전, 파워시프트 현상이 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경쟁자로 본다. 한국은 일본을 만만하게 본다. 과거처럼 한국을 봐 주자, 일본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도 한국의 국제적 지위와 책임을 인지하면 좋겠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국가이고 칸 영화제에서 상도 받는 나라인데 국민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마음을 이중적으로 갖고 있는 듯하다. 역사 문제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그 외 문제는 미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즉 역사 문제는 사료를 발굴해서 정당성을 강화하고 세계 인권 문제에 적극 발언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위안부 문제를 전시 여성인권 이슈로 만들어 냈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폭행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나.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죄가 필요하다. 우리 역사의 교훈을 세계 담론으로 승화시켜야 우리의 정당성이 높아진다. 일본만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배경엔 국력 역전… 우리 국민도 책임 인식을”

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제155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경찰 바리케이트 너머에선 보수단체 회원들이 수요시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제155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경찰 바리케이트 너머에선 보수단체 회원들이 수요시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일본과 협력을 꼭 해야 하느냐는 이들이 더러 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서, 일본은 한국에 어떤 의미인가.

“탈일본은 잘못된 생각이다. 세계화 시대에 실현 가능하지 않다. 미국도 중국과 디커플링을 못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부가가치를 어떻게 높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 의존도가 높아 경제안보 측면에서 위협을 줄여야 할 필요는 있지만 국제분업으로 얻은 이익이 크다. 장기적으로 이 체제는 유지될 것이다. 신냉전을 고려해서도 일본은 중요한 협력 대상이다. 일본이 동북아 안보에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 일본과 협력이 한국의 국익 증진에 필수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북한 대응만 아니라 중국의 위협, 사이버 테러 등을 고려할 때 동북아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위협으로 느끼는데 유사시 대응하려면 공동훈련이 필요하다. 한일 간 협력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일본을 보험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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