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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80억마리 집단 실종 '부메랑'... 식탁 물가 위협한다

입력
2022.07.2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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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100% 수박 93% 수정벌에 의존
기생충·살충제·이상기온 벌떼 실종
세계 식량 70%가 곤충 화분매개 덕
사태 반복 시 식량·사료작물 큰 피해

2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 농가에서 꿀벌이 수박꽃에 앉아 꿀과 꽃가루를 수집하고 있다. 뒷다리에 노란색 꽃가루를 저장한 꿀벌이 수꽃과 암꽃을 옮겨다니면서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횡성=서재훈 기자

2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 농가에서 꿀벌이 수박꽃에 앉아 꿀과 꽃가루를 수집하고 있다. 뒷다리에 노란색 꽃가루를 저장한 꿀벌이 수꽃과 암꽃을 옮겨다니면서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횡성=서재훈 기자

"꿀벌이 뒷다리에 노란 꽃가루 묻히고 벌통으로 들어가는 거 보이죠? 저렇게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수박 열매가 맺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2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해발 700m 고랭지에 자리한 애플수박밭. 원두식(64)씨는 지난달 애플수박 농사를 시작하며 새로운 '조력자'를 모셔왔다.

애플수박에 처음 도전한 농사 경력 40년 베테랑을 도울 이는 바로 꿀벌이다. 꿀벌은 수박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으로 옮겨주는데, 이렇게 수꽃과 암꽃의 수정이 이뤄지면 암꽃 아래로 동그란 수박이 자란다.

애플수박을 키우기 위해 원씨는 횡성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지역 양봉농가로부터 꿀벌 3만 마리를 빌렸다. 사람이 붓이나 살포기를 이용해 직접 꽃가루를 옮길 수도 있지만, 부지런한 꿀벌을 따라갈 순 없다. 원씨는 "벌은 수박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가져가고, 우리는 열매를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라 말했다.

수박꽃에 날아와 앉아 있는 꿀벌. 수박꽃과 줄기 아래로 애플수박이 엄지발가락만한 크기로 자라나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수박꽃에 날아와 앉아 있는 꿀벌. 수박꽃과 줄기 아래로 애플수박이 엄지발가락만한 크기로 자라나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꽃가루 연결하는 꿀벌...경제적 가치 6조 원

수꽃과 암꽃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꿀벌이 수박 농사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국립농업과학원 2020년 조사를 보면, 수박·딸기·참외·토마토 등 총 27개 작물이 꿀벌, 뒤영벌 등 수정벌에 의존(화분매개)하고 있다. 수정벌 의존 비율(면적 기준)을 작물별로 보면 수박이 92.7%, 참외 93.1%, 딸기는 100%다. 사과처럼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키우는 작물도 그 비율이 20%를 차지한다.

작물별 벌수분 의존도. 김문중 기자

작물별 벌수분 의존도. 김문중 기자

최근엔 개화기에 드론을 띄워 꽃가루를 뿌릴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지만, 현장에서 굳이 꿀벌을 선호하는 이유는 벌을 이용해야 열매가 열리는 비율(착과율)이 높기 때문이다. 횡성군에서 양봉업을 하는 윤상복(53)씨는 "꿀벌은 애벌레의 먹이로 쓰기 위해 악착같이 꽃가루를 수집한다"며 "그러다 보니 수정률도 높아지고 상태가 좋은 열매가 잘 맺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농촌에선 수정벌을 이용하면 인건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통상 수박의 경우 꿀벌 1통을 2주간 빌리는 가격이 6만5,000원 선이다. 2주간 꿀벌 2통을 임대하면 13만 원을 써야 하는데, 시간당 임금이 1만2,312원(올해 1분기 여성농업노임 기준)인 인부를 고용하면 2주간 인건비가 34만 원이 넘는다. 이 때문에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에선 양봉산업의 주목적이 꿀을 얻는 게 아니라 화분매개인 경우가 많다. 국내 학계에서는 벌을 통한 화분매개의 경제적 가치를 연간 6조 원 정도로 추산한다.

꿀벌 수분VS인공 수분 비용 비교도. 김문중 기자

꿀벌 수분VS인공 수분 비용 비교도. 김문중 기자


그런데, 꿀벌 80억 마리가 사라졌다고?

양봉업자 윤상복씨가 2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밭에서 수박꽃 수정에 활용되는 꿀벌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양봉업자 윤상복씨가 2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밭에서 수박꽃 수정에 활용되는 꿀벌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이렇게나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꿀벌. 그런데 올해 초 전국 양봉농가에서 꿀벌이 대거 사라지거나 폐사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3월 한국양봉협회의 현황 조사 결과, 전국 2만6,673개 농가 중 4,556개(17.1%) 농가가 집단 폐사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본 봉군(벌무리)만 41만7,556개(15.1%)에 달하는데, 1봉군당 2만 마리로 계산하면 80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죽거나 사라진 셈이다.

주요 지역, 사라진 꿀벌 현황

주요 지역, 사라진 꿀벌 현황


농촌진흥청은 꿀벌 집단 폐사 원인으로 꿀벌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응애를 지목했다. 응애 같은 해충의 습격을 받게 되면 벌무리 세력이 약화되고, 겨울을 견디는 월동 능력도 저하된다. 응애를 잡기 위한 살충제 탓에 꿀벌도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지난해 9, 10월 저온현상으로 벌의 발육이 부진했고, 11, 12월에는 이례적인 고온현상 탓에 개화기가 앞당겨진 것도 원인이다. 몸이 약해진 상태로 겨울을 나던 꿀벌이 예년보다 일찍 꽃가루를 수집하는 등 외부활동에 나섰고, 다시 기온이 낮아지자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폐사했다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농가 모습. 600평 규모의 수박밭에 꿀벌 약 3만 마리가 화분매개활동을 하고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강원 횡성군 둔내면 애플수박농가 모습. 600평 규모의 수박밭에 꿀벌 약 3만 마리가 화분매개활동을 하고 있다. 횡성=서재훈 기자


꿀벌 사라지면 가축 생산까지 타격

꿀벌 실종 사태는 양봉농가를 덮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양봉업계에선 실종 이후 6개월이면 꿀벌 수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그 사이 봄꽃이 피고 수분(受粉) 시기가 시작된 게 문제였다. 3, 4월 딸기꽃이 피기 시작하자, 수정벌 공급이 달려 꿀벌 임대료 가격이 올라갔다. 윤화현 한국양봉협회장은 "논산 같은 딸기 주산지에선 일찍부터 벌을 빌려야 하는데, 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통상 15만 원하던 꿀벌 임대료가 20만 원까지 치솟은 데다 벌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농가에선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한 딸기가 나오는 일도 있었다.

3월 중하순에 수정을 시도하는 수박 농가에도 꿀벌 실종 여파가 미쳤다. 통상 5만5,000원 남짓이었던 꿀벌 임대료가 7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일조시간과 기온 등 꿀벌의 수정 환경도 양호하지 못해, 5월엔 딸기 출하량이 전년 대비 7%, 수박 출하량은 4%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월 딸깃값은 전년 대비 12%, 5월 수박값은 38%나 올랐다. 이경용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사는 "날씨가 흐리거나 온도가 낮으면 꿀벌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꽃가루가 잘 터지지 않거나 꽃이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면서 "꿀벌 임대료 상승, 이상기온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수박 출하량이 줄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딸기 참외 수박 등 작물 외에도 꿀벌 감소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이승환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는 "세계 식량 작물의 70% 이상이 곤충의 화분매개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 꿀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면서 "꿀벌이 사라지면 농작물 생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사료작물을 소비하는 가축 생산에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준다"고 우려했다.

꿀벌 집단 폐사, 반복될 수도

20일 강원 평창군 봉평면 사과농장에서 곽문규씨가 사과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곽씨는 사과 화분매개를 위해 꿀벌도 직접 키우고 있다. 평창=서재훈 기자

20일 강원 평창군 봉평면 사과농장에서 곽문규씨가 사과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곽씨는 사과 화분매개를 위해 꿀벌도 직접 키우고 있다. 평창=서재훈 기자

양봉농가나 수정벌에 의존하는 농가들은 꿀벌 실종 사태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농부 원두식씨는 "20년 전엔 굳이 꿀벌을 빌리지 않아도 수박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면서 "예전엔 꽃나무 아래 앉아 있기만 해도 왱왱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벌을 빌려와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양봉업자 윤상복씨는 "개발되는 면적이 넓어지고 나무가 사라지면서 점점 벌이 살 곳이 줄고 있다"며 "요샌 정말 벌 한 통도 아쉬운 시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평창군 봉평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곽문규(68)씨처럼 아예 농사에 쓸 꿀벌을 따로 키우는 농가도 늘었다. 사과꽃 수정에 쓸 꿀벌 사육규모를 2배 이상 늘렸다는 곽씨는 "올봄에 벌통 4개를 열어 보니 벌이 싹 다 사라지고 없었다"며 "또 비슷한 상황이 올 수 있어 지금은 벌통 9개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도 구하기 힘든 데다, 인공수분을 해서는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며 꿀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곽문규씨의 벌통 입구에 일벌들이 드나드는 모습. 평창=서재훈 기자

곽문규씨의 벌통 입구에 일벌들이 드나드는 모습. 평창=서재훈 기자

전문가들은 꿀벌 집단 폐사 현상의 반복 가능성을 우려하며 꿀벌 부족이 식탁 물가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2006년부터 시작된 꿀벌 집단 폐사 현상으로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를 생산하는 캘리포니아 농가들이 붕괴 위기에 놓였던 사례가 있었다. 아몬드는 꿀벌 수분에 100% 의존하는 작물이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벌, 나비 등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따로 꾸려 대응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매년 겨울 30%씩 사라지는 꿀벌… 백악관도 보호 나섰다)

꿀벌 감소는 농가 수준, 농업의 영역에서 노력한다고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아무리 양봉농가들이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해도 기후 위기와 관련된 변수에는 대응을 할 수가 없다"면서 "산림 녹화, 대기 오염 관리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 꿀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횡성= 이현주 기자
횡성= 소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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