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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형벌로 낭비된 국가혁신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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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삼권분립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행정부가 행정법 위반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 형벌이 아닌 행정처분으로 제재하는 법제도가 정착돼 있는데,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들은 광범위한 행정형벌을 규정해 그 위반행위를 형벌로 단죄하는 경향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행정법규 곳곳에 행정형벌이 규정돼 있고, 행정부도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 그 제재수단으로 행정형벌을 규정하는 관행이 여전히 범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 행정법을 형사법으로 바꾸어 버리는 행정형벌의 남용을 이제 단절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가 사법권에 기대어 국민을 옥죄는 행정형벌은 필요최소한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행정부 입장에서는 행정법규에 형벌을 규정하면 행정부 권위를 높이는 수단이면서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경찰과 사법부에게 처리를 넘길 수 있으므로 일손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행정형벌이 남발되다 보니 급기야 모든 정부 부처 행정공무원이 직접 특별사법경찰관이 되어 수사권까지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행정부는 법률안 제출권, 시행령 이하 입법권을 갖고 있다. 행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행정법제에 무분별하게 도입된 행정형벌의 문제점은 헤아릴 수 없는데, 그중에 행정범죄로 규정된 내용이 해석상 모호한 위헌조문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행정목적을 위해서 포괄적으로 규정된 금지조문에 형벌을 붙여 놓으니 행정부 해석에 따라 폭넓게 처벌이 가능해진다. 형벌이 붙은 행정규제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유추해석을 금지하고, 명확하지 않은 행정규제는 경찰과 검찰, 법원이 과감하게 위헌법률로 선언해 무죄를 선고해야 하나, 우리 사법부는 행정부의 유권해석을 존중하므로 그마저 쉽지 않다. 부득이한 임금체불이 형사 처벌되는 아이러니는 이렇게 생겨났다.
행정형벌은 경직적이므로 국가의 혁신과 디지털 변환을 가로막는 대표적 걸림돌이다. 범죄로 규정된 규제를 행정부가 재량으로 타협해 줄 수 없으니 말이다. 우버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단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장의 유연한 대응 덕분이었다. 자가용 승용차의 유상운송 중개모델인 우버를 과감하게 허용해 준 것처럼 국민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신산업을 지방자치단체 재량으로 허용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행정법규위반이 바로 범죄로 처벌되니 디지털 신산업 분야에서 외국 빅테크가 성장해 우리 산업까지 지배하는 걸 뜬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처지다.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아 디지털 의료산업이 걸음마 단계이고, 과다한 개인정보보호 규제로 인공지능의 고도화가 지연되어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해외 인공지능 빅테크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은 이제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과다한 행정형벌로 국민의 혁신을 가로막는 사이에 혁신국가로 변신할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다. 과거의 규제는 과거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므로 신기술과 신산업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행정부의 통 큰 선언과 실행이 시급한 시점이다. 나아가 행정부가 나서서 행정형벌의 유혹을 끊고 원칙적으로 행정처분으로 일하는 성숙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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