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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개나 되는 자폐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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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속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는 ‘고래 덕후’다. 고래 얘길 할 땐 눈빛까지 달라지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때론 자신이 고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한다. 단순한 설정만은 아니다. 제한된 특정 영역에 유독 남다른 관심을 갖는 것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다.
□ 자폐의 정식 명칭에 ‘스펙트럼’이 붙은 이유는 증상이 워낙 다양해서다. 제한된 관심이나 반복적인 행동이 나타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공통적이지만, 그 외 증상들은 환자마다 천차만별이다. 간혹 우영우처럼 자폐인데 지능이 매우 높거나 특정 재능이 아주 뛰어난 경우가 있는데, 왜 그런지는 현대의학도 아직 모른다. 자폐를 오래 연구해온 한 과학자는 “자폐로 뇌의 일부 기능이 떨어지면 그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다른 쪽으로 활용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란 추측이 있다”고 했다. 맹인의 청각이 유독 발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 자폐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약 1,200개다. 유전자가 많으니 증상이 다양하다. 암 종류가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자폐 유전자는 대개 뇌 발달이나 시냅스와 관련된 유전자다. 시냅스란 신경세포가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연결된 부위다. 뇌 발달 과정 어딘가에 이상이 생기거나 신경세포에서 오가는 신호에 균형이 깨지면 자폐가 생길 수 있다. 과학자들은 여러 뇌질환 중 자폐에 특히 관심이 많다. 유전자가 본격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지가 10여 년밖에 안 돼 연구할 게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 세계 인구 44명 중 1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우울증(인구의 약 1%), 조현병(1%), ADHD(5%)보다 많다. 환자는 느는데 약은 없다. 과학자들은 물론 제약사들도 자폐 치료제 첫 개발 타이틀을 놓칠세라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한 연구진은 한국인 자폐 환자와 가족 3,700여 명을 모아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다. 1,200개가 대부분 북미와 유럽 연구로 밝혀진 유전자인 만큼 우리나라 환자의 특성을 알아내려는 시도다. '우영우 변호사'와 유전자 연구가 자폐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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