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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군사대국 일본, 개헌도 기시다 결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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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뜻을 이어받아 헌법 개정 등 난제를 풀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의 중의원 선거에 이은 이번 선거 압승은, 기시다 정권이 대내외 정책을 안정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물론 헌법개정도 추진하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며,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참고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세력은 전체 의석의 3분의 2(166석)보다 많은 177석을 확보했으며, 중의원에서도 전체 465석의 3분의 2를 상회하는 345석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국내외 많은 전문가 및 언론매체들을 기시다 정권이 빠르게 진행할 경우 2023년 4월 통일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또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의 보통국가화, 군사대국화가 본격 추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헌 추진 시점은 매우 유동적이다.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전후해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칠 가능성도 크다. 기시다 정권 입장에서 아베 전 총리의 유훈이 된 개헌문제를 정권 운명을 걸고 조기에 추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가 개헌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건 개헌세력인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이 신중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 외에도, 다음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기반과 성향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세계 최초 원폭 피폭지역인 히로시마(廣島)를 지역구로 둔 자민당 내 온건파 그룹 ‘고치카이(宏池會)' 소속이다. 특히 ‘핵 없는 세계와 평화’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기시다 총리는 2023년 G7 정상회의 히로시마 개최를 결정했으며, 지난 6월 샹그릴라 안보대화에서는 ‘평화를 위한 기시다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가 포스트 아베를 계승할 리더로 평가되기 이전에는 헌법 9조 개정에 부정적 견해를 가졌던 것도 이런 의문에 힘을 싣는다.
둘째, 2014년 아베 정권이 ‘해석 개헌’을 통해 현행 헌법으로도 새로운 안보방위정책을 전개하는 데 제약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결정했고, 최근 일본 정부는 전수방위 원칙을 형해화하는 적기지 공격이 가능한 군사력의 구축 방침도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헌법 9조 개정을 포함한 새 헌법 제정의 필요성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로 직결될 개헌을 추진할 당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개헌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의미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개헌이 이뤄진다면 일본의 안보방위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전후 일본의 헌법 정신에 입각한 전수방위 원칙이 공식 폐기될 것이다. 전수방위란 상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은 후에야 방위력을 행사하고, 행사·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한정하는 전략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개정 헌법은 ‘방어’보다 ‘공격’ 능력을 중시하는 군사능력에 대한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둘째 미일동맹 체제 비중에서의 변화가 예상된다. 전후 일본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재건에 모든 국력을 투입하는 ‘경무장, 경제중시의 요시다 노선’을 채택했다. 헌법 9조의 취지가 변경된 새 헌법은 이런 국가노선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경무장 노선의 공식 폐기를 의미한다. 즉 헌법 개정을 계기로 일본은, 미일동맹체제는 유지하되 독자 방위력 증강을 중시하는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여 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우호국에 대한 제3국의 무력공격에 대해 군사대응이 가능한 집단적 자위권을 위헌 논란 없이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아베 정권의 헌법 해석 변경에도 불구, 집단적 자위권의 적극적 해석은 위헌 논란에 휩싸여 왔다. 그러나 새 헌법의 등장은 전수방위 원칙의 폐기에 더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문제를 둘러싼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개헌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일본이 사실상 보통국가, 군사대국이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사거리 1,000㎞가 넘어 이론적으로는 한반도 타격이 가능한 ‘스탠드오프(Stand-off) 미사일’을 개발하고, 방위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증액하는 등 일본의 군비증강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적기지 공격능력을 갖춘 ‘스탠드오프 미사일’은 현행 헌법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보통국가로의 공세적 군사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탠드오프 미사일은 적 함대의 침공 저지 및 상륙부대의 배제 등이 목적인데, 일본은 △노르웨이의 공대지 순항미사일(JSM·사정거리 약 500㎞) △미국 합동공대지 순항미사일 개량형(JASSM-ER·사정거리 926㎞ 이상) △장거리 공대함 순항미사일(LRASM·사정거리 약 800㎞) 개발 등을 검토했다. 현재 LRASM 도입은 중단하고 JASSM-ER에 대해서는 F-15J 개량형 102기 중 70기에 2028년까지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또 육상자위대의 12식 지대함미사일 사정거리를 약 1,000㎞로 연장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방위비 증액도 군사강국을 목표로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방위비는 2020년 기준 약 50조 원 규모이다. 그러나 계획대로 향후 5년간 GDP 대비 2%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다면 매년 방위비가 10조 원가량 증가하게 된다. 이는 2027년쯤에는 방위비가 한국(2022년 54조 원)을 훨씬 뛰어넘는 100조 원 규모가 된다는 걸 뜻한다. 일본 방위예산에서 인건비 등 비율이 전체의 40%인 점을 감안하면, 늘어난 예산을 토대로 2027년에는 일본이 연간 60조 원 규모의 물건비(방위력 개선비)를 집행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민당에서 지난 4월 제시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등에 관한 제언’에서 인공지능(AI)·무인기, 양자기술 등 첨단기술, 하이브리드전, 정보전, 사이버, 우주 등의 분야와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 등 공격능력 전력강화에 나설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일본의 이런 전력강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일관계가 갖는 복잡성과 민감성을 고려할 때,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한국이 직접 균형을 맞추는 방안은 양국 간 상대적 국력 차이를 고려할 때 쉬운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한미동맹 강화를 전제로 한 한미일 협력 등 소다자적 틀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협력가능 분야를 확대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일본 릿쿄(立敎)대학교 법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 하버드 대학 라이샤워 일본 연구소의 객원연구원 등을 거친 후 2007년부터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국제전략연구실장, 안보전략연구센터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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