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코인' 사절한 영국 까칠남 "낯뜨거운 한국 문제 누군가는 지적해야"

입력
2022.07.22 13:51
수정
2022.07.22 14: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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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저자
라파엘 라시드 저널리스트 인터뷰
"차별금지법 제정" 당부도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가 18일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가 18일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11년째 한국살이 중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36)는 ‘까칠한 영국 남자’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을 추켜세우는 ‘국뽕' 선사형 외국인은 결코 아니다. 한국이 쉬쉬하는 혐오와 차별, 무한경쟁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게 그의 특기다.

“한국이 싫으면 떠나라”는 비판을 받다 보니 맷집도 세졌다. 잡지 ‘엘르’에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한 칼럼을 인기리에 연재했고, 내친김에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이란 책을 썼다. 지난 18일 한국일보에서 마주 앉은 그는 “하도 욕을 먹어서 이번 인터뷰 기사에 어떤 댓글이 달릴지도 예상된다”고 웃었다.

일단 거짓말은 잘 못하는 성격이다. 한국에 온 배경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어렸을 때 본 영화 올드보이, 한국 배낭여행 등 작은 인연들이 모여 한국에 정착했다. 어쨌든 소아스(SOAS) 런던대에서 한국ㆍ일본학을 전공했고, 고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3년간 한국 홍보회사에서 일하며 미생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한국을 알 만큼 안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한국에서는 피나는 ‘노오력’을 해야 간신히 먹고 살고, ‘헬조선’(지옥과 한국의 합성어)과 ‘N포 세대’(취업과 결혼을 포기한 세대) 등 흉흉한 단어가 입버릇처럼 쓰인다는 사실을. 그는 “해외 언론들은 주로 북한ㆍK팝ㆍ성형수술에 관심 갖고, 한국인이 살아가는 얘기는 잘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대신 책에 썼다. 사회적 약자에 냉정한 시스템, 능력보다 눈치와 스펙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 한국 언론의 ‘소설 쓰기’ 관행까지. 한국인엔 익숙한 문제인데, 외국인까지 알아보니 낯이 화끈거린다.

비판이 쌓이다 보니 ‘한국 혐오자’라는 공격도 받는다. 욕설 메일은 차고 넘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비난 댓글로 도배된다고. 그는 “한국에 좋은 얘기를 하는 외국인 엔터테이너, 국뽕 인플루언서는 이미 너무 많다. 누군가는 한국의 문제점도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책엔 정치적 독자들을 뜨끔하게 만들 대목이 여럿 있다. SNS에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을 칭찬하면 정부 지지자들이 열렬히 환영하고, 외국 매체에 부정적 칼럼을 쓰면 반대 성향 매체들이 부지런히 번역해 퍼 나른단다. 양쪽 모두를 비판하니 ‘도대체 누구 편이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는 “한국에 중도 지대는 없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한국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날카롭게 쓴 책 곳곳엔 한국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다. “영국은 전통을 고수하는 점은 좋지만 갈 때마다 같은 풍경이다. 한국에서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고 매 순간 새롭고 극적으로 전개된다. 변화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어 한국을 떠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한단계 더 성숙해 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법 제정으로 한순간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 왔던 부당한 차별들을 시정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비판받을 대상은 라시드가 아니라 게으른 정치인들 아닐까.

정지용 기자
현정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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