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가 '방조'하는 살인 Ⅱ

입력
2022.07.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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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장 샤를 데 메네제스

2005년 영국 런던 스톡웰 지하철 역사의 장 샤를 데 메네제스 추모 담벼락에 붙은 사진. wikimedia.commons

2005년 영국 런던 스톡웰 지하철 역사의 장 샤를 데 메네제스 추모 담벼락에 붙은 사진. wikimedia.commons

만 27세 브라질 청년 장 샤를 데 메네제스(Jean Charles de Menezes)가 2005년 7월 22일 영국 런던 지하철 스톡웰(Stockwell)역 열차 안에서 경찰이 쏜 총 7발을 맞고 즉사했다. 52명이 희생된 ‘7·7 런던 폭발물 테러’ 보름 뒤였고, 불과 하루 전에도 유사한 테러 미수사건이 빚어진 터였다. 경찰은 그를 폭발물 테러범으로 오인했다.

브라질 미나스주에서 태어나 공립기술고교에서 전기·전자공학을 공부한 메네제스는 2002년 6개월 비자로 영국에 입국, 비자 만료 후 1년 학생 비자로 체류 기간을 연장했다. 사건 당시 그는 사촌 2명과 함께 작은 아파트를 빌려 불법체류하며 전기 수리공으로 학비를 모으던 중이었다. 그날은 소방경보기 고장 수리 요청을 받고 런던 북부 킬번으로 출장을 가던 길이었다. 배낭을 멘 비백인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걸 폐쇄회로(CC)TV로 확인한 경찰은 그를 미행했다. 전날 테러 미수사건 용의자와 복장 등이 유사했다고 한다.

지하철에 동승해 미행하던 비무장 경찰이 플랫폼에 도착한 무장 경관에게 달려가 “여기 그가 있다!”며 메네제스를 가리켰고, 당황한 메네제스가 일어서면서 가벼운 몸싸움이 시작됐다. 경찰은 손에 흉기도 들지 않은 그의 머리와 가슴에 즉각 발포했다. 2000년 뉴욕 9·11테러 이후 영국 경찰이 채택한 ‘크라토스 작전(Operation Kratos)’ 즉 테러 용의자에 대한 ‘경고 없는 즉각 사살’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유족과 인권단체는 경찰의 인종 차별과 과잉 대응을 성토했고, 브라질과의 외교 마찰도 빚어졌다. 하지만 경찰 당국은 공식적인 사과와 유감 표명 외에 어떠한 과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유럽 인권재판소 역시 2016년 3월 경찰 관련자 누구도 기소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채택했다. 4년여 법정 공방은 결국 유족에 대한 10만 파운드(약 1억5,751만 원)의 보상금과 소송 비용 대납을 조건으로 합의 종결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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