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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더 오를 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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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김홍빈(1964.11.20~ 2021.7.19)은 1991년 북미 최고봉 알래스카 데날리(6,190m)에서 두 손 열 손가락을 동상으로 잃었다. 그는 덜 미더워진 팔의 힘만큼 다리 힘을 길러 2021년 마침내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를, 장애인으로서 처음 완등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송원대 재학시절 등반을 시작한 그는 14좌 완등의 사실상 첫 목표였던 데날리에서 저 사고를 당했다. 자일과 스틱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고산 등반가에게 손(팔)을 쓸 수 없게 된 건 치명적이었다. 실의와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속옷을 혼자 입어낸 뒤 혼자 흐느끼기도 했다. “창문을 열 수 없어 자살도 시도할 수 없던” 그는 생계를 위해 어렵사리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땄지만 장애인에게는 좀체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장비 가게를 운영해 돈을 벌면서,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 스키와 스케이트, 바이크를 탔다. 스틱은 붕대로 손목에 묶었다. “이 세상에 나에게 맞춰진 것은 없으니까. 내가 맞춰가야 하니까.” 그는 “넘어지더라도 팔을 짚으면 안 되니까 등으로 넘어지게끔 항상 그런 잠재의식 속에서” 산을 탔다.
2006년 시샤팡마(8,027m)와 갸셔브룸II(8,034m), 이듬해 에베레스트(8,848m), 또 이듬해 마칼루(8,485m)… 그렇게 도전을 이어가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그만하면 됐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비장애인 등반가에게는 결코 하지 않을 말들을 하곤 했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저런 기억들을 웃으며 전했다. 물론 그에겐 충분하지 않았고, 2021년 브로드피크(8,051m)를 등정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급 14좌를 완등했다.
그는 브로드피크 하산 도중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등으로 넘어져도 다시 서서 오르기엔 너무 높고, 구조대의 눈도 못 닿는 깊은 곳이었다. 그는 거기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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