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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더 올리자"는 집주인, 금리 급등까지... 난감한 세입자

입력
2022.07.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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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서울 아파트 월셋값, 전세보다 4배
전세대출금리는 12년 만에 최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입자

17일 서울 도심의 한 부동산에 월세 상담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거래가 역대 최다 수준으로 나타났다. 뉴스1

17일 서울 도심의 한 부동산에 월세 상담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거래가 역대 최다 수준으로 나타났다. 뉴스1

결혼을 앞둔 김모(35)씨는 직장과 가까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신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점찍었지만 월세계약서에 쉽사리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전셋값이 워낙 올라 전세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세살이가 더 나을 거라 봤는데, 막상 알아보니 월셋값도 만만찮게 올랐기 때문이다.

김씨가 고른 전용면적 84㎡ 아파트는 2년 전만 해도 보증금 3억 원에 월세는 50만~1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지난달엔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150만 원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최근엔 보증금 5억 원에 월세 90만~120만 원 수준의 매물이 나왔다. 현재 전세 시세(7억5,000만 원)를 고려한 전·월세전환율은 5.7%에 이른다. 김씨는 "눈높이를 낮출 생각이지만 인근 아파트 월세도 크게 올라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셋값 급등에 놀라 월세를 대안으로 택했다가 두 번 놀라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1~2년 전과 확 달라진 월세 시세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전세대출금리는 1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탈출구마저 없다. 설상가상 집주인들은 각종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월세를 더 올릴 태세다. 한마디로 세입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전세 주춤하니 이번에 월세 고공 행진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17일 한국일보가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의 월세 거래 현황을 분석했더니, 월셋값 상승 추세는 확연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A단지는 현재 부동산에 나온 전용 59㎡ 전·월세 매물이 총 124개인데, 월세(72개)가 전세(52개)보다 훨씬 많다. 3년 전보다 3억 원가량 뛴 11억 원 수준의 전셋값을 감당할 수 있는 세입자가 거의 없다 보니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내는 '보증부 월세' 매물이 크게 늘었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월세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해 중순 이 아파트 전용 59㎡ 중간층(7·12층)은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250만~270만 원으로 거래됐는데, 올해는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290만~300만 원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인근 B아파트(전용면적 77㎡)는 4월 보증금 7억 원, 월세 70만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현재 전세시세가 8억 중반대인 점을 고려하면 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이자인 전·월세전환율은 5.6%다. 이는 1년 전(4.8%)보다 1.2%포인트 뛴 것이다. 보증금 1억 원을 월세로 돌릴 때 내야 할 비용이 480만 원에서 560만 원으로 80만 원 늘었다는 얘기다.

서울 송파구의 대단지 아파트(6,000가구) C단지는 올해 6월까지 전·월세 거래 516건 중 월세가 264건으로 전세(252건)를 앞질렀다. 전용 84㎡의 경우 지난해 1월 보증금 3억1,500만 원에 월세는 163만 원이었는데, 지난달엔 보증금 3억 원, 월세 230만 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전·월세전환율이 2.8%에서 3.9%로 1.2%포인트나 뛰었다.

실제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올 1~6월 서울 중형(96㎡ 이하) 아파트 월세는 2.8%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 상승률(0.6%)을 4배 웃돈다. 특히 4인 가족이 주로 거주하는 서울 도심권 전용면적 85㎡ 아파트의 전·월세전환율은 지난해 6월 4.2%에서 올해 4월 4.7%로 0.5%포인트나 급등(한국부동산원)했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4만2,087건으로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많다.

월셋값은 왜 뛰나?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최근 월셋값이 뛰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통상 전·월세전환율은 금리 추이와 유사하게 움직인다. 2011년 12월 8%였던 전국 전·월세전환율은 이후 금리 하락과 궤를 같이해 줄곧 내려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엔 시중금리가 빠르게 뛰자 집주인들이 임대수익을 높이기 위해 월세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집주인이 세금·대출이자 같은 각종 비용을 월세에 전가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부동산 커뮤니티엔 "전세보증금은 더 올리기 어려우니 월세를 올려 뛴 이자를 부담하겠다"는 식의 집주인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월셋값 고공 행진에 이어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금리(금리 상단 연 6.2%)도 12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전세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월셋값도 뛰는 추세라 세입자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근 전셋값이 소폭 떨어진 점을 들어 '8월 전세 대란'은 없다며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최근 매매 거래가 끊기면서 전·월세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주택 공급이 없는 도심 지역에선 임대차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8월 전세 대란은 없다는 식으로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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