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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으면서 어떻게 쓰겠다는 건지

입력
2022.07.15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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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면접관이 될 일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노트북을 켜고 구글폼으로 표를 공유하며 면접이 끝나면 바로 점수를 확인했다. 나는 프린트물에 연필로 점수를 매겼다. 지우개가 없어 쓱쓱 그어 가면서. 몇 항목 되지도 않는데 쉽게 암산이 되지 않아 휴대폰에 있는 계산기로 합계를 냈다. 면접 후에는 노트북을 갖고 있는 이에게 내가 매긴 점수를 불러줬다.

이틀간의 면접이 끝나고 합격자를 가리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연필로 이런저런 표시와 숫자가 쓰인 프린트물을, 나머지 두 사람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이야기했다. 노트북을 갖고 있던 이들은 계속해서 자판을 두들겼다. 모든 말을 기록하고 말겠다는 듯 사정없이 자판을 두들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말을 조리 있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두서없이 말을 해버렸다.

큰 이견 없이 심사가 끝났고, 그들이 노트북을 닫는 동안 나는 집에 가서 연필을 깎아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나도 글을 쓸 때는 아주 일찌감치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크게 주눅들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지 촌티가 났다.

면접을 보면서 내가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글을 쓸 사람들이었고, 그러면 적어도 나는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는 이는 두세 사람에 불과했다. e북도 본다고 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굳이 이유를 말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옛날에는 책을 좀 읽었다, 대부분의 글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본다 등등. 질문 자체가 촌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읽지 않는 이들이 쓰겠다고 하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읽지 않고 어떻게 글을 쓸까. 쓰기 전에 우리 모두는 '읽는' 사람들이며, 쓰는 사람이 되겠다 했을 때는 더 읽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e북을 읽지 못하는 나에게 책은 책, 즉 물질로서의 책이다. 나에게 책은 단순히 그 내용만이 아니라 책을 집어든 순간부터 질감을 느끼며, 제목과 날개와 목차와 본문 등을 차례로 읽어가다, 마침내 이어지는 이야기에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거나, 혹은 좋은 문장 앞에서 가만 멈추거나 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하는 순간들까지가 모두 '책'이며 '읽기'이다.

나의 생각은 한계가 있어 자주 벽에 부딪힌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보잘것없는 먼지이며 이내 사라지고 잊힌다. 사람에 대한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람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소설을 통해 만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다르다.

며칠 전 이런저런 일로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운 건 한 권의 책이었다. 스벤 슈틸리히라는 낯선 독일 사람이 쓴 '존재의 박물관'이라는 책이었다. 위로라는 단어 하나 없었지만, 그 책에 빠져드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았고, 책을 덮은 후에는 내 주변의 물건과 장소들을 생각하며 나답게 살다 가야겠다 생각했다. 한 권의 책이 나를 채워준 것이다.

빌딩 속에 갇혀 면접과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자 땅에서 시원한 기운이 올라왔다. 한 시간 전 도시의 열대야와는 다른 공기, 사방의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내게 얼른 숨을 들이쉬라고 몸을 흔들었다. 나는 크게 숨을 쉬었다. 살 것 같았다. 이러니 촌티 풍기며 시골에서 책방을 하며 살지.


임후남 읽고 쓰는 사람·생각을담는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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