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던) 날이 장날'은 변화 중

입력
2022.07.15 04:30
25면
제주시민속오일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시민속오일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속담은 어떤 상황을 비유할 때 사용되며 이야기의 말맛을 감칠맛 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속담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한 표현으로 특유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속담의 쓰임도 고정되지 않고 역동적인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맛집을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문을 닫았다'나 '친구 집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잔치가 있어 배불리 먹었다'처럼 부정 상황과 긍정 상황을 모두 아우르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흥미롭다.

국어사전 중에 이 속담을 처음 실은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을 보면 "①우연히 갔다가 의외에 재미를 보았다는 데 쓰는 말. ②형편에 의하여는 ①과 반대되는 경우에도 씀"으로 긍정과 부정 상황의 풀이가 모두 확인된다. 문세영 사전에서 뜻풀이한 순서로 보면 긍정적 상황이 먼저 쓰였고 반대 상황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간행된 북한의 '조선말 대사전'에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은 좋은 일을 만나게 된 것"을 비유한 말로만 풀이되어 긍정적 쓰임이 우선으로 보인다.

최근 신문에서 이 속담의 쓰임을 보면 대부분 부정 상황과 연관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주로 좋지 않은 날씨로 계획한 행사가 취소되거나 시간을 내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는 부정적인 상황에 빈번하게 사용된다. 기본적인 의미가 부정 상황에서 쓰이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예전의 장날과 지금의 장날은 위상에서 차이가 나고 장날이 일상어에서 밀려난 것도 의미 변화를 이끈 이유일 것이다. 단어의 의미가 사회·문화적인 요인에 따라 변화하듯 속담의 쓰임도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황용주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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