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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고마움 손끝으로 표현하니 평온 찾아와 [마음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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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가 강릉이야, 하와이야?"
지난달 17일 강원 강릉시 사천면 일대의 한 해변가. 디즈니 만화 '모아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의 젊은 여성 약 17명이 모였다. 일명 '히피펌'으로 불리는 물결펌을 한 이들은 모두 알록달록한 훌라 치마 '파우'를 입고 있었다. 하와이 전통 춤인 훌라를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번 행사는 '위크엔더스'의 '리트릿 오롯이, 나'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됐다. 리트릿(retreat)은 바쁜 일상에서 한 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여행을 뜻한다. 이 행사를 주최한 한귀리 '위크엔더스' 대표는 평소에는 해변 요가, 서핑 강습 등의 프로그램을 열지만, 이날은 특별히 훌라 춤 세션을 열었다. 훌라 춤 수업은 이튿날까지 이틀 연속 진행됐다.
평소 춤은커녕 음악도 듣지 않는 기자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강릉행 기차를 탔다. '나만 혼자 어색하면 어떡하지?' 괜스레 초조해지는 마음을 달래려고 기차 안에선 일부러 회사 홈페이지와 메일함만 들락거렸다.
오후 2시쯤 됐을까. 눈이 부시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기차 안에서의 근심은 저 멀리 사라졌다. 알록달록한 꽃과 풀이 새겨진 총천연색 파우를 입고 나니 '빨리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와이문화교류협회 소속 전문강사인 김지현씨는 우선 모든 참가자에게 서로 원형으로 서서 손을 맞잡도록 안내했다. 그리고 기존에 훌라를 접해 본 이들과 함께 하와이 기도문 '에 호 마이(E Hō Mai)'를 낭독했다. '에 호 마이'는 공연이나 수업 등 중요한 행사에 앞서 훌라 댄서들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위해 만들어진 의례다. 가사에는 "하늘의 지혜와 노래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소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처음 듣는 언어가 주는 설렘이 있었다.
간단한 몸 풀기 후, 훌라의 기본 스텝을 먼저 배웠다. '카오(Ka`o)'는 천천히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골반을 좌우로 무겁게 누르며 이동하는 스텝이다. '헬라(Hela)'에서는 엉덩이를 왼쪽으로 움직이며 오른발을 한 보 앞으로 움직인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때 손과 발은 같은 방향, 엉덩이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스텝만 배우는 데도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았는데, 상체 연습도 시작됐다. 이날 배우게 된 곡은 '펄리셸(Pearly Shells)'의 영어 버전이었다. 훌라에서의 모든 손 동작은 자연 혹은 산물 등을 지칭한다. '몸으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노래만 알아듣는다면 이해하기 쉬운 동작들이었다. 가령 조개는 손을 조그맣게 모아 표현하고, 파도는 두 팔을 굴리면서 표현한다. 얼핏 보면 수화와 비슷하다.
'펄리셸'은 대략 "파도에 밀려온 진주조개들의 개수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낸 곡이다. 그래서일까. 김씨는 수업 중 계속해서 '미소'를 강조했다. 그는 "누가 사랑하는데 얼굴을 찡그리나요"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찌뿌려졌던 미간의 긴장을 풀었다.
훌라를 접한 지 5개월쯤 됐다는 현혜원씨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알로하를 몸으로 표현하는 훌라의 매력에 빠졌다"면서 "일렁이는 손 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가사에 등장하는 하늘, 바람, 바다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 보면, 어느새 사회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아무 일도 아닌 듯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들끓던 것들은 어느새 차분해지고 부정적인 기운 대신에 밝은 에너지가 차오른다"고 덧붙였다.
대략 한 곡을 배우고 다 같이 음악에 맞춰서 배운 대로 춤을 춰봤다. 처음에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았다. 찍어준 영상을 다시 보니 손과 발과 골반이 모두 따로 놀았다. 은은한 미소를 지어야 했지만 표정은 그 누구보다 심각했다.
하지만 '잘 해야 한다'는 마음조차 내려놓고, 뙤양볕 밑에서 가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느낌이었다. 발에 닿은 모래알, 귀에 꽂히는 파도와 음악소리, 눈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한 파우들. 일상에서 보이는 마천루와 온갖 소음이 싹 잊힐 정도였다.
훌라의 마지막은 역시나 '에호마이'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현씨는 "에호마이를 할 때마다 일상에서 훌라의 세상으로 훌쩍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본 참가자들을 마주했을 땐 '다들 프리랜서인가' 싶을 정도로 자유분방해 보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대기업 종사자, 카피라이터, CEO 등 서울에서는 숨가쁘게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이었다.
카피라이터 겸 작가인 현씨는 "훌라 스승인 김씨는 훌라에 대해 '내 안의 바다를 꺼내는 춤'이라 얘기한다"며 "눈앞에 바다가 있으니 더 많은 바다를 꺼내는 충만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날 처음 훌라를 접한 마케터 윤아영씨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에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으로서 자연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그러면서 평온함을 느꼈는데, 이런 게 영적 수련일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기차, 조금은 새까맣게 탄 얼굴이 창가에 비쳤다. 대자연 한가운데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훌라를 통해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평안과 여유를 찾은 듯했다. 창 밖에 보이는 마천루가 이전만큼 그리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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