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요양보호사 어찌하오리까

입력
2022.07.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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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비 받는 수단으로 우후죽순 마케팅
관리 어렵고 돌봄 사회화 취지에 어긋나
금지는 어려워… 공적 돌봄 더 정교하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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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손해, 부모님 돌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기회!’

‘5060이라면 무조건 따야 하는 자격증, 놓치지 마세요!’

인터넷에 흔한 마케팅 문구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가 있거나 노후 걱정이 큰 장년층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다. 문구들이 추천하는 건 ‘가족 요양보호사’다. 돌봄이 필요한 고령의 가족을 보살피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일정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가정의 돌봄 수요도 해소하고 돈도 버니 일석이조다. 아예 가족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인원을 늘려 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작 제도를 시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가장 큰 고민은 가족 요양보호사가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지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요양보호사들은 급여 대상 노인을 방문하면 서비스 시작과 종료 시점을 자신이 고용 계약을 맺은 재가장기요양기관에 알린다. 그 시간 동안 요양보호사는 수급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건보공단은 서비스를 점검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재가장기요양기관 현지조사를 나간다. 요양보호사가 ‘출석 체크’만 해두고 외출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등 서비스를 부실하게 하면 수급자는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가 딸이고 아들이면 차마 그러질 못한다. 아파도 불편해도 참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가족 요양보호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은 73.1%가 야간(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이다. 한밤중에 무슨 서비스가 이뤄지는지 확인하려 해도 수급자가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그래도 급여는 나랏돈으로 꼬박꼬박 지급된다. 이들의 급여는 건강보험료와 통합 징수되는 장기요양보험료에서 나온다. 때문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요양보호사 자격만 따면 국가에서 쉽게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마저 확산됐다. 아예 생계비가 나온다고 광고하면서 자격증을 따라고 부추기는 요양보호사 교육원도 있고,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는 가족들만 고용해 정부에 급여 비용을 청구하는 재가장기요양기관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목적인 ‘돌봄의 사회화’에도 어긋난다. 고령이나 질병 때문에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가족 누군가가 도맡아 돌봐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인데, 취지와 달리 노인 수발을 가족에게 맡기는 역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요양보호사를 무작정 금지하긴 어렵다. 수급자가 타인에게 서비스 받기를 거부하거나 수급자의 문제행동 때문에 일반 요양보호사가 서비스 제공을 기피하는 경우엔 부득이하게 가족이 돌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는 가족이 돌봄을 제공하는 걸 막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수급자가 가족이어서 오히려 더 마음을 담아 충실하게 돌보는 가족 요양보호사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에는 65세 이상 비중이 전체 인구의 40%를 넘는다. 노인 돌봄 수요가 급증하리란 건 자명하다. 우리보다 먼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한 독일과 일본은 가족 요양보호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가정에서 비상업적으로 노인을 수발하는 사람을 위한 별도 지원책을 만들었다.

가족 요양보호사는 점차 증가해 지난해 12월 말 기준 9만4,159명으로, 전체 방문형 재가급여 활동 요양보호사(32만6,291명)의 28.9%나 차지한다. 건보공단은 “가족 요양보호사 문제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공론화와 많은 고민을 거쳐 접근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노후를 지원할 사회보험 제도가 더 왜곡되기 전에 가족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공적 돌봄 체계를 정교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임소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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