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엑스레이 찍는 자전거 아시나요" 자전거 유통 혁명 만드는 김희수 라이트브라더스 대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부쩍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 품귀 현상이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실내 운동과 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야외 활동을 겸한 운동으로 자전거를 찾았고, 친환경에 대한 관심과 최근 물가 상승 부담 등이 겹치며 자전거 출퇴근족도 증가했다.
그 바람에 자전거 판매가 급증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전거 수출국인 중국은 지난해 자전거 수출액이 51억 달러(6조3,800억 원)로 28억 달러를 기록한 2019년 대비 82% 치솟았다. 그럼에도 공급이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자전거 가격이 크게 뛰었고 그마저도 인기 제품은 사전 예약을 하고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
덩달아 중고 자전거 판매도 늘었다. 문제는 중고 제품의 신뢰 여부다. 겉에 보이는 부분은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함까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신생기업(스타트업)이 김희수(52) 대표가 2017년 설립한 라이트브라더스다. 지난 5월 서울 한강변 채빛섬에 문을 연 라이트브라더스매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사명이 특이하게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을 한 라이트 형제다. "라이트 형제는 요즘으로 치면 스타트업인이죠. 자전거를 좋아한 형제는 자전거 회사를 만들었어요. 그들은 균형을 잡고 페달을 밟으면 나아가는 자전거 원리를 비행기에 접목해 페달을 밟는 비행기로 하늘을 날았죠. 하늘을 날고 싶은 인류의 꿈을 이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전거 덕후(자전거광)들이죠. 이들의 도전 정신을 본받고자 사명을 지었어요."
"이름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사명에 미래를 담았어요. 단순 자전거 판매점이 아니라 자전거 생태계를 바꾸고 싶어요. 나아가서 드론택시 사업도 하고 싶어 드론 기술 특허까지 등록했죠."
김 대표는 중고 자전거 판매에 국내 최초로 엑스레이 검사를 도입했다.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을 넘어가는 고가 중고 자전거의 경우 판매자 동의를 얻어 엑스레이로 자전거 내부를 찍은 뒤 결함을 찾아내는 비파괴 인증 검사를 거쳐 가격을 책정해 판매한다. "차대를 카본으로 만든 비싼 자전거는 가볍지만 충격을 받으면 내부에 균열이 발생해요. 이를 수리하면 처음에 만든 밸런스가 깨져요. 이를 파는 사람이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죠. 심지어 겉에 있는 흠도 감추려고 밤에 거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엑스레이를 찍으면 자전거 차대 내부의 실금까지 확인할 수 있고 어디를 고쳤는지 수리 이력도 알 수 있죠. 이런 것들을 모두 찾아내 중고 가격에 반영해요."
이런 검사를 거친 중고 자전거는 '라브 인증' 표시가 붙는다. 판매자가 인증을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다. "인증 여부를 판매자와 구매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거래의 다양성을 열어뒀어요."
김 대표는 마치 침수 자동차를 찾듯 엑스레이 검사로 흠이 있으면 가격에 반영해 믿고 살 수 있는 중고 자전거 거래 문화를 만들었다. 겉에 있는 흠도 전문가들이 일일이 찾아내 붉은 화살표를 붙여 놓는다.
자전거의 엑스레이 촬영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세계 1위의 자전거 전문 검사장비 업체인 독일 익스론사의 3억 원 넘는 장비를 들여와 서울 서빙고 인증센터에 설치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제일 떨렸던 순간이 익스론 장비를 사올 때였어요. 대만의 자이언트, 독일 캐년 등 고가 자전거 업체들이 출고 전에 익스론으로 비파괴 검사를 하죠."
서울 서빙고에 마련한 인증센터에서 내부와 외부 검사를 거친 중고 자전거들은 큐알코드가 붙는다.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자전거의 엑스레이 사진과 함께 내부 결함, 수리 이력이 자세히 표시된다. 또 최종 점검한 전문가의 설명까지 나온다. 이런 식으로 중고 자전거를 판매하는 곳은 아직까지 없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 사업을 해외에서도 하기 위해 미국에 비즈니스 특허를 등록했다.
자전거 판매는 스마트폰 앱과 업체 홈페이지, 매장을 통해 이뤄진다. 판매 목록에 붙은 오렌지색 표시는 '라브 인증' 검사를 거친 제품들이고, 파란색 표시는 인증검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들이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매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키에 맞춰 자전거를 구분해 놓았다. "각자 키에 맞는 자전거를 고르기 쉽도록 키 높이별로 구분했어요."
지난 5월 문을 연 약 3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은 서울 반포대교 남단의 한강변 자전거도로 옆 채빛섬에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서면 탄성을 지른다. 구불구불한 곡선형 매장의 높은 벽을 따라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350대의 자전거들이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자전거 테마파크 같은 매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 스페셜라이즈드 신품 50대와 300대의 중고, 전기 자전거 등 각종 자전거들을 키 높이별로 전시했죠. 가격대도 40만 원에서 2,000만 원대까지 다양해요. 전시된 자전거들은 빨리 팔려서 한 달 간격으로 계속 바뀌어요."
자전거뿐 아니라 안전모, 옷, 각종 소모품 등 자전거 용품들도 판매한다. 한쪽에는 카페와 정비공간이 있다. "정비공간에서 키와 다리 길이를 측정한 뒤 안장 높이와 손잡이 위치를 조정해 줘요. 온라인으로 구입해 배송받은 자전거도 매장에 가져오면 조정을 받을 수 있죠."
다른 판매점보다 가격이 싸지는 않다. "가격을 낮추지는 않아요.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를 주죠.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의 실패를 줄여주는 겁니다."
그는 이용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7일 안심 환불제와 90일 관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제품 구입 후 일주일 동안 타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액 환불해 줘요. 또 구입 후 90일 안에 매장을 찾아오면 바람 넣는 법, 타이어 펑크 대처법 등 궁금한 것들을 가르쳐 주죠. 자전거 구입 후 100일 안에 계속 탈지 말지 결정이 나요. 바람을 넣을 줄 모르거나 펑크 났을 때 대처 방법을 몰라 자전거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자전거를 오래 탈 수 있도록 이런 것들을 알려주죠."
김 대표는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자전거 문화 확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각종 자전거 행사, 코스 개발 및 추천 등 콘텐츠를 개발한다. 자전거가 하드웨어라면 자전거 문화는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매장을 자전거 문화 체험공간으로 만들고 있어요. 다음달에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함께 먹는 '런치 라이드' 행사를 준비해요. 또 자전거를 이용한 맛있는 빵집과 카페 투어,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코스를 다룬 '데이딩' 등 주제별 콘텐츠를 만들어 사이트에 소개해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자전거 여행 상품도 준비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전거 여행을 신청하면 자전거를 빌려 주는 상품을 3분기부터 시작해요."
김 대표는 자전거를 통한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미국 업체와 공동으로 탄소 계산기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판매하는 자전거마다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다. "앱에 자전거 소재와 무게 등을 입력하면 탄소 저감량을 보여줘요. 이를 통해 이용자들은 자전거를 구입하며 환경보호를 체감할 수 있죠."
지금까지 김 대표가 중고 자전거 판매로 줄인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보니 66만3,861㎏이다.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까지 비행기로 746회 왕복하며 배출하는 탄소량을 절감한 셈이죠."
자전거를 구입하면 주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 이름도 친환경에 기여하는 달콤한 땀이라는 뜻의 '스윗 스웨트 포인트'다. "회사의 모토인 스윗 스웨트 라이프(Sweet sweat life)를 포인트에 반영했어요. 내가 흘리는 땀이 얼마나 기분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하는 말이죠."
같은 뜻에서 서울시의 재생 자전거 위탁 판매도 하고 있다. 재생 자전거란 길에 버린 자전거를 서울시에서 수거해 25개 구의 취약계층을 위한 자활센터에서 수리해 판매하는 자전거다. 평균 가격이 8만6,000원인 재생 자전거의 판매 수익 대부분은 자활센터로 돌아간다. 라이트브라더스에서 갖는 수익은 1.5%다. 여기에도 탄소 저감량을 표시해 판매한다. "지난 1월 영등포구와 첫 번째 협약을 맺었는데 두 달 만에 10개구가 참여했어요. 3분기까지 모든 구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김 대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자전거 관련 모든 것들이 모이는 자전거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살 때 우선 떠올리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자전거 판매부터 각종 콘텐츠, 나중에 자전거 여행사까지 고를 수 있는 자전거 플랫폼을 지향해요. 자전거 제조사들도 입점시킬 계획입니다."
그래서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는 탄소계산기를 포함해 20건 이상의 특허를 신청해 상당수 등록을 완료했다. "자전거 시세를 조회해 인공지능(AI)이 분석하는 사업모델 특허, 블록체인으로 자전거 이력을 등록하는 기술, 드론택시 사업 특허 등을 국내외에 등록했죠.”
여기에 맞춰 지난해 미국 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사업도 서두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스타트업의 숙명이죠. 내년 초 미국 사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자전거를 많이 타는 일본에서도 사업을 준비해요."
투자업체들도 김 대표의 계획을 눈여겨보고 롯데벤처스, IBK기업은행, 하나은행, CJ 등에서 누적으로 98억 원을 투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5월 성장성 높은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했다.
중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평화방송의 라디오 리포터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케이블TV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알게 된 회사에 브랜드 전략팀장으로 취직했다. 이때 그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청년 2명이 창업해 거꾸로 그를 영입했다. "두 청년이 나중에 국내 최대의 브랜딩 전문업체가 된 메타브랜딩의 전신인 이름고을이라는 회사를 창업했죠. 거기로 이직해 네이밍 팀장을 맡아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설화수, 이니스프리, 오설록, SPC의 파리바게뜨 등의 브랜드 콘셉트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자전거 시장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초등학교 동창인 김병수 부대표와 함께 2017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4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을 만큼 자전거 애호가다. "인증을 거친 중고 자전거 판매라는 개념을 김 부대표가 제안했죠. 더불어 브랜드 전문가 일을 한 경험을 살려 획기적인 자전거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만큼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에 특화된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54명 직원 가운데 김 대표를 비롯해 상당수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채빛섬 사무실 벽에는 직원들이 타고 온 자전거들이 걸려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직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사내에 샤워실을 만들었고 최고급 드라이어까지 구비했어요. 회식도 자전가를 타고 가서 밥 먹고 헤어지는 '자전거 회식'을 해요."
그의 꿈은 한국적인 자전거 문화를 K팝처럼 세계적인 문화로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자전거도로가 아주 잘 돼있어요. 이런 것들을 알릴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전거를 우선 배려하는 제도와 문화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