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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유류세 인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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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기름값을 잡겠다며 또다시 '세금 인하' 카드를 꺼냈다. 1일부터 휘발유와 경유, LPG 부탄 등에 붙는 유류세율을 법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가장 높은 37%까지 깎았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제 유가 상승 뒤 20% 인하, 5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0% 인하에 이어 8개월 만에 세 번째 조치다.
정부는 그러면서 리터(L)당 휘발유 57원, 경유 38원은 내릴 것이라 예상했다. 11일 오후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2,089원과 2,130원이었다. 유류세 인하 전날인 지난달 30일의 2,145원 및 2,168원과 비교하면 각각 56원, 38원 내린 가격으로 일단 목표치에 도달한 셈이다.
문제는 하락세의 지속 여부. 그동안은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면 잠깐 효과를 보다 얼마 안 돼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기름값 상승도 원유가격 급등과 석유 제품 가격 상승 같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는데 당분간 인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유류세를 내리는 바람에 올해 세수 8조 원 이상이 줄어들 예정이다.
유류세 인하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당연히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는 서민보다 크고 비싼 차를 타는 이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임상수 조선대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2012년 유류세 인하 영향 분석 결과를 언급하며 "소득분위 1분위에 비해 5분위의 가격 탄력성이 작았다"며 "저소득층일수록 유가에 민감해 휘발유 소비량을 줄이는 반면 소득이 높은 계층은 소비량을 유지하기 때문에 인하 혜택은 고소득층에 많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유류세를 내렸던 5월의 휘발유·경유 소비량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소비가 되살아나는 '펜트업(Pent-up)' 효과로 4월에 비해 43%나 늘었다. 이런 소비 증가는 또다시 가격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상당수 국민이 세금 깎아서 서민을 돕겠다는 정부의 시도에 물음표를 다는 이유다. 그런데도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100%로 넓히는 법안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류세 인하 폭을 70%까지 확대하는 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류세 인하는 절대 만능키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으는데도 정치권은 '보여주기 식 숫자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를 향해 "단속" "점검" "엄벌" 등의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며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과연 '기름 소비자' 국민을 위한 대책은 뭘까. 유류세를 50% 인하할 경우 줄어드는 연간 세수가 최대 15조 원인데, 세수감소를 수반하는 유류세 인하 대신 ①저소득층과 화물차 운전자, 배달 기사, 정수기 코디, 학습지 교사 등 고유가에 직격탄을 맞는 특수고용직 종사자에게 에너지 비용을 직접 지원하면 어떨까. ②한 달에 9유로(약 1만2,000원)로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독일의 '9유로 티켓'처럼 자가용을 덜 타게 유도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기름을 덜 소비하는 사회의 정착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적 동참을 호소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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