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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좀 끼치는 게 당연한 사회

입력
2022.07.11 22:00
27면
노인요양보호사가 돌봄 상대와 함께 운동을 하고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노인요양보호사가 돌봄 상대와 함께 운동을 하고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그의 남편은 투석하러 매주 서너 번씩 병원에 간다. 당뇨가 있으며,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척수염이 있어 수술했다. "제가 허리도 지키고, 다리 근육도 더 키워야 합니다."

72세, 10년차 요양보호사. 서울 서대문구의 비교적 규모가 큰 재가장기요양센터에 적을 두고 있는 그는 우수요양보호사 표창도 받았다. 현재 79세인 남편이 10년 전 쓰러졌을 때,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동시에 방문요양 일을 시작했다. 현재 베테랑급으로 돌봄노동을 하는 60~70대 요양보호사들의 전형적 진입 동기다.

"남편이 배움이 적어서 평생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애들도 형편이 좋지 않아요, 뭐 사이도 좀 그렇고… 해준 게 별로 없으니… 내가 일하지 않으면 남편 처지가 참 딱해지는 거죠…" 고단한 생의 끝자락에 있는 남편의 '존엄'이 훼손될까, 말과 태도를 고른다. 3시간짜리 방문요양 두 군데, 집안 일과 남편 수발, 투석받으러 가는 남편 동행 등 그가 해내는 일의 목록이 길다. 시간표를 잘 짜는 게 중요하다. 핵심은 남편이 끝까지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지키는' 거다.

"내 소원이라면 그이가 험한 꼴 보기 전에, 여든두 살쯤 하늘나라로 가는 겁니다. 앞으로 3년 잘 살다가… 내가 일 끝내고 집에 가면 아직은 현관까지 나와서 '왔냐, 고생했다, 어서 와라' 웃으면서 등도 토닥이는데… 그럴 수 있다가, 집에서 그렇게 살다가 가면 좋겠어요." 그가 말하는 '험한 꼴'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린 나는 노인요양원에 대해 조금 말을 주고받다가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본인의 '험한 꼴'에 대해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자식들한테요? 절대 안 됩니다. 인지장애 노인을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러니까 내가 계속해서 허리도 다독이고 다리 근육도 더 키우면서 나를 잘 지켜야 합니다."

정신분석 전문가들에 따르면, 내담자들의 말에는 '열쇠가 되는 문장'이 있다. 일종의 주도 모티브처럼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문장은 내담자의 정신 풍경에 서 있는 표지판 같은 것이다. 그의 열쇠 문장은 '배움이 적어서'와 '내가 (그를/자식들을/나를) 지켜야 한다'였다. 나는 그 자신의 '3년 이후'가 걱정되었다. 그가 쓰러지면 누가 돌보나? 누가 그의 존엄을 지켜주나?

나이가 많건 적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돌봄 수혜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돌봄 정책도 돌봄 제공자(혹은 돌봄 제공)를 중심으로 모색된다. '돌봄자로 호명되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숨 쉬며 말하는 여성들도, '그러나 나를 돌봐달라고 하진 못할 거'라고, '폐 끼치며 살 순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돌봄이 필요한 의존 상태, 인간의 보편적 취약성 등에 대한 '지식'이 확산될수록 오히려 강화된다. 돌봄의 공공화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시장이 세를 넓힌다. 역설이고 모순이다.

배움이 적어도, 자본이라곤 없어도, 가족과 무관하게, '나를 돌봐달라'고 마음 편히, 당당하게 청할 수 있는 사회. 돌봄을 축으로 생애를 상상하고 기획하는 게 자연스러운 그런 돌봄 사회는 언제 '우리 사회'가 되나. 정체성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소속될 필요 없이, '시민이니까' 돌봄을 청하고 받을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장치들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돌봄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민폐'가 아니라 당연한 삶의 '활동'으로 누구나, 아무나 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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