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반복되는 어선 화재… '선박 다닥다닥' 대형 피해 다반사

입력
2022.07.10 10:00
수정
2022.07.10 15:01
19면
구독

최근 3년6개월간 제주서 43건 발생
선박 대부분 FPR 재질 화재 취약
복잡한 내부 구조로 대피도 힘들어

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내 정박한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8일 오전 사고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내 정박한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은 8일 오전 사고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제주에서 지난 4일 서귀포시 성산항에 정박 중인 어선에서 불이 난 데 이어, 7일에도 제주시 한림항에서 어선 화재가 발생했다. 이들 화재로 2명이 실종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와 함께 40억 원에 이르는 재산피해까지 발생했다. 매년 선박 화재가 반복되고 있지만, 불에 취약한 재질 등 고질적인 화재 원인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성산항 화재는 지난 4일 오전 4시 23분쯤 항구 내에 계류돼 있던 A호(29톤)에서 시작한 불이 세 차례의 폭발성 불꽃과 함께 A호와 붙어 정박해 있던 B호(39톤)와 C호(47톤)까지 빠르게 번졌다. 세 어선은 당시 북상 중인 태풍 '에어리(AERE)'를 피해 다른 어선들과 다닥다닥 붙어 정박 중이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세 어선과 고성능 화학차가 불에 타는 등 잠정 피해액만 29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10시 17분쯤에 발생한 한림항 화재도 성산항과 비슷한 양상으로 불이 번졌다. 한림항 화재는 항구에 계류돼 있던 D호(29톤)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은 뒤 D호 양옆에 있던 E호(49톤)와 F호(39톤)에 불이 옮겨붙었다. 이 화재로 D호 한국인 기관장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등 2명이 실종 상태로, 현재 수색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 선장 등 승선원 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재산피해도 11억 원 정도로 추산됐다.


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에 정박 중인 연승어선 3척에 불이 나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제주 동부소방서 제공

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에 정박 중인 연승어선 3척에 불이 나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제주 동부소방서 제공



사흘 사이 발생한 이들 화재는 진행 양상이 항구에 정박돼 있던 한 어선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나 주변 어선으로 번지고, 어선 안에 있던 유류에 불이 옮겨붙어 재발화까지 일어나 화재 진압이 어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방당국이 관할 소방서 인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1단계까지 발령해 초기 대응에 나섰지만, 성산항 화재는 12시간, 한림항 화재는 7시간 만에 가까스로 진화했다.

이처럼 선박 화재는 한번 발생하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크지만 매년 반복되고 있다. 실제 제주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제주에서 2019년부터 지난 9일까지 43건의 선박 화재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9년 13건, 2020년 12건, 2021년 11건 등이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는 9일까지 7건의 선박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도 컸다. 2019년에 3명 숨지고 9명이 실종됐으며, 2020년에도 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지난해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올해는 지난 7일 한림항 어선 화재로 2명이 실종됐다. 장소별 선박 화재 발생 건수는 항·포구 14건, 해상 25건이었다.

선박 화재가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어선 대부분이 화재에 취약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소재로 제작된 데다 어선 내부에는 기름, 가스 등 상당한 가연성 물질이 적재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재 발생 장소에 따라 추가 요인도 적지 않다. 항·포구 화재인 경우, 이번 성산항과 한림항 화재처럼 ‘밀집 정박’이 화재를 키웠다. 성산항 화재의 경우 태풍을 피해 한꺼번에 어선들이 몰리면서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한림항의 경우 항구 크기에 비해 정박하는 어선이 많아 일상적으로 배가 밀집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화재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소방 관계자는 “정박어선 화재는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신고 접수 시 즉각 관할 소방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상에 발생한 화재는 복잡하고 좁은 어선 구조가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대부분의 어선은 선실이 배 밑부분에 위치해 있고 공간이 좁아 비상시에 대피가 쉽지 않아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9년 11월 19일에 발생한 제주 대성호(29톤) 화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성호는 사고 당시 제주시 차귀도 해상에서 조업 중에 불이 나 선원 12명 가운데 3명만 숨진 채 발견됐고, 다른 선원들은 현재까지도 실종 상태다. 인명 피해가 이처럼 큰 이유는 새벽 시간대에 발생해 불이 FRP 재질의 선체에 순식간에 퍼졌고, 복잡한 어선 구조로 대피하거나 불을 끄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는 잇따라 정박어선 화재가 발생하자 제주에 있는 모든 선박에 대한 긴급 소방안전점검과 항·포구별 소방시설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이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어민 대상 안전교육 등 보완 대책도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해경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선박 화재를 예방하고 관련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속한 조사·점검과 안전 예방조치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제주= 김영헌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