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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팔려 우울증 걸릴 판"... 주택시장 곳곳서 '악'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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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 남구 대연동 주민 김모(60)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년 가까이 팔리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간다. 10월 근처 새 아파트로 입주할 계획이었는데, 기존 집이 팔리지 않으면 잔금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유주택자이면서 연금 소득에만 의존하는 김씨는 정부의 대출 규제로 은행에서 잔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집이 안 팔려 평생 대출이자만 갚는 건 아닌지 공포심이 들어요. 이달까지 집이 안 팔리면 전세로 돌려 급한 불을 끌 생각이에요."
#2. 직장인 황모(31)씨는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인천의 A아파트에 입주하려던 계획을 접고 급하게 전세를 내놨다. 입주는 당장 내달부터 시작이지만 두 달 가까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 세를 놓는 집주인이 급증해 세입자 구하기가 별따기라는 중개업자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전셋값을 내렸지만, 잔금에 턱없이 부족해 나머지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가 걱정이다.
'절벽'을 넘어 '빙하기'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최근 주택시장의 거래 침체는 극심하다. 지난 정부 때처럼 집값이 너무 치솟아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주택 거래가 끊기다시피 해도 적잖은 사회적 손실을 유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당장 입주 물량이 몰린 일부 지역은 대규모 미입주 사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부동산 후방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매매는 15만5,987건으로 지난해(31만5,153건)의 절반 수준이었다. 한국부동산원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후 1~5월 기준으로 가장 적다. 서울은 5월까지 아파트 매매가 7,917건이었는데, 같은 기간 1만 건을 밑돈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택 거래가 잠긴 배경은 복합적이다. 집값이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요자들이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시중금리까지 오름세라 실수요자라 해도 주택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집값이 하향 조정 중이긴 하나 그간의 상승폭에 견주면 미미한 데다 집값 상승 기대감까지 꺾여 비싼 대출이자를 감수하고 집을 살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달 첫째 주 기준 전국 아파트 매수 심리지수는 30.6(기준 100·국민은행)으로 2년 10개월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시장 기대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다주택자 세 부담을 줄여준다며 양도세 중과 조치를 1년 유예했는데, 이 영향으로 다주택자의 '절세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7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6만5,17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3,955건·출처 아실)보다 48% 급증했다. 같은 기간 광주(385%), 인천(115%), 대전(105%), 경기(83%) 등 주요 지역에서도 매물이 쌓이고 있다.
그런데 대출 규제는 생애 최초 구매자를 제외하면 그대로 유지해 유주택자의 시장 진입을 여전히 차단하고 있다. 현재 서울, 부산 같은 규제지역에서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는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집값의 5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2주택 이상은 주택 대출이 아예 금지다.
기존 집을 팔고 새집으로 갈아타려던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서울 금천구의 3,500가구 대단지인 B아파트는 현재 나온 매물이 170건에 이르는데, 이달 성사된 거래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올해 통틀어서도 7건에 그친다. 연초 집을 내놓은 김모씨는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이 안 팔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회원 수가 180만 명인 한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집이 안 팔려 이사를 못 간다"거나 "이자 갚다 지쳐 피 마른다" 같은 토로글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한 글쓴이는 '집이 안 팔려 결국 전세를 놓고 이사를 갔는데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탓에 전세 낀 집은 더 꺼리는 추세라 걱정이 크다'고 적었다.
당장 내년까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인천, 대구, 울산, 경남 지역에선 대규모 미입주 사태까지 우려될 정도로 매물 적체 현상이 심각하다. 이달 입주를 앞둔 인천의 C단지는 전체 가구 수(1,100가구)의 40% 수준인 418건이 매매, 전·월세로 나와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D단지(1,200가구)는 34%가 전·월세 물량이다. 세 집 중 한 집(34%)은 입주하지 않은 셈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기존 집이 안 팔려 세를 놓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 물량까지 일시에 쏟아지자 세입자를 못 구해 자금 계획에 비상이 걸린 집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건설업체 500여 곳을 상대로 매달 입주전망지수를 발표하는데, 지난달 지수는 72.6으로 2020년 5월 이후 가장 낮았다. 미입주 원인을 조사했더니 세입자 미확보(35.2%), 기존 주택 매각 지연(31.5%)을 꼽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대구(57.6), 부산(66), 인천(70)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현승 주산연 연구원은 "전세대출 금리 인상으로 세입자 부담도 커진 터라 7월 입주지수는 더 악화할 걸로 보인다"며 "일부 지역에선 심각한 미입주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거래 침체로 중개업소·이사·가구·도배 등 부동산 후방산업도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에는 중개사무소를 매매할 수 있는 양도 게시판이 있는데, 이달 들어 중개업소를 넘기겠다는 글만 무려 494건이 올라왔다. 이렇게 한 달도 안 돼 양도글이 쏟아진 건 전례가 없다고 한다.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송파·용산 등지에서도 싼 권리금에 사무소를 넘기겠다는 글이 잇따랐다.
협회 관계자는 "9, 10월이 가장 성수기인 가을 이사철이라 평소라면 지금 한창 응대를 하느라 바쁜 시기인데, 지금 사무실을 내놓는다는 건 가을 영업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라며 "과거에도 거래 침체기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했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포장이사협회 관계자는 "임대차 2법 탓에 전·월세 거래까지 막혀 지금은 포장이사 수요가 거의 없어 말 그대로 고사 위기"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거래 절벽 현상에 대해 아직까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아직 미분양이 눈에 띌 만큼 늘지 않았고, 세제 개편 같은 규제 완화 기대감에 매수를 미루는 경우도 많은 걸로 보인다"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긴 하지만 아직 거래 활성화 정책을 쓸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진단은 다르다.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거래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시장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국민대 겸임교수)는 "전 정부의 극단적인 규제책으로 집값이 뛰고 그 후유증으로 현재 심각한 거래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며 "장기화하면 2010년 집값 하락기에 나타난 역(逆)전세난, 하우스 푸어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이미 시장에선 '집을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퍼질 만큼 매수심리가 위축돼 있다"며 "거래 활성화 차원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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