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도구로 전락한 행정수도

입력
2022.07.08 04:30
수정
2022.09.14 21:5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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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전경. 행정도시건설청 제공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전경. 행정도시건설청 제공


“세종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

측정하기 쉽진 않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충청지역에서 내놓은 이 공약의 여파는 컸다. 대통령 선거를 1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던 지난 3월 3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유세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충청의 아들’ 윤석열로 충청대망론이 실현될 경우 세종시가 진짜 행정수도가 되고, 주변 지역도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질적인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세종청사에서 두 차례 국무회의를 연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감동을 주지 못했던 터, ‘한번 바꿔보자’는 여론 형성에 한몫했다.

충청지역의 이런 민심은 대선 80여 일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표출됐다. 조치원 유세보다 훨씬 앞서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지를 찾아 대통령 세종 집무실 설치 필요성을 역설하고, 격주로 세종 집무실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겠다고 한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진짜 수도 세종’ 실현을 위해서라도 같은 당 후보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던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단체장 자리가 모두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충청지역은 지금, 무엇을 해도 다 되는, ‘충청의 시간’을 맞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통령과 단체장이 같은 당인 점은 이전과 같지만, 변화를 확실히 준 점이 평가를 받는다.

충청의 시간 속에서 행정도시 세종은 행정수도로 반전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노무현을 계승한 전 정부와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찔끔 움직였는데, 야당이 벌인 행정수도 건설 사업에 여당이 힘을 싣겠느냐는 것이다. 또 집중을 통한 효율성을 중시하는 보수의 특성상 수도권 인구와 기업의 지방 이전이 수반되는 ‘행정수도 완성’ 공약은 2년 뒤 총선에 가서야 '하는 시늉'을 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첫 국무회의 세종 개최’ 약속을 지킨 게 사실상 전부인 현실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싣는다. 110대 국정과제 중 행정수도 완성 과제가 없고, 균형발전특위가 균형발전 관련 15대 국정과제를 4월에 따로 냈지만, 별 움직임이 없다.

‘믿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러니 지역에선 ‘행정수도가 선거 도구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보다 선명한 ‘진짜 행정수도 세종’ 공약을 내놓은 것, 인수위에 균형발전특위를 설치한 것, 그리고 지방선거 사전투표 전날 첫 국무회의를 세종에서 개최한 것 등이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얘기다.

행정수도 건설 논의는 반세기 전 박정희 시절부터 있었다. 서울 집중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선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정치권의 인식 아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1971년부터 나왔다. 이후 3군 본부 이전, 정부대전청사 설치, 전국의 경제특구 지정 등 정권마다 균형발전 정책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상황이 악화하자 시작된 게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와 전국의 혁신도시 건설 사업이다. 공무원을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민주당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윤석열 정부가 거리 둘 필요는 없다. “진짜 수도 세종”을 공약하고 집권한 정부이지 않은가. 이 처방마저 먹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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