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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왜 '전직 수장'들에게 동시다발로 칼을 겨눴나

입력
2022.07.07 04:30
수정
2022.07.07 10:5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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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대북 특수정보 열람은 하더라도
첩보를 가공하거나 폐기할 수 있을지 의문
탈북자 합동신문은 국정원 주도하는 절차
문재인 정부 '흔적 지우기'로 비칠 소지도
두 사건 모두 尹 대통령 관심사인 공통점

2018년 4월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과 악수하는 모습. 오른쪽은 서훈 국정원장. 연합뉴스

2018년 4월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과 악수하는 모습. 오른쪽은 서훈 국정원장.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6일 박지원·서훈 두 명의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아무리 물러난 신분이기는 하나 상명하복과 기밀유지가 생명인 정보기관의 생리상 전직 수장을 향해 이처럼 동시다발로 칼을 빼든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출범 두 달을 맞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흔적 지우기'를 본격화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의 경우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책임을 물었다. 서 전 원장에게는 2019년 11월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 당시 합동조사를 강제 종료시킨 혐의를 적용했다.

모두 북한과 관련해 과거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을 놓고 현 정부 들어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진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관건은 고발당한 이들이 해당 사건의 결과를 뒤집거나 흔들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이희호 여사 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뉴스1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이희호 여사 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당시 이대준씨의 월북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한미 군 당국이 확보한 대북 특수정보(SI)였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고위 인사가 SI 관련 자료를 조작해 '월북 몰이'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따라서 국정원 주장대로 박 전 원장이 ‘첩보 관련 보고서’를 무단 삭제하려면 SI 첩보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정보당국 수장이 SI 첩보를 살펴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실제 사건 직후 언론에 최초 공지된 ‘공무원 실종사건’을 ‘사망사건’으로 바로잡은 인물이 박 전 원장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국방부는 2020년 9월 22일 오후 10시 11분, SI 첩보로 이대준씨 사망을 확인하고도 다음 날 오후 1시 30분 국방부 기자단에 ‘실종 사건’으로 공지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 한 언론이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이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사실을 보도하고 나서야 사실관계가 바로잡혔다. 이때 등장한 정보당국 관계자가 박 전 원장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국정원은 같은 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피격 사건 후, 우리 군의 SI가 언론을 통해 노출돼 북측이 자기들끼리 교신할 때 쓰는 은어체계가 변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다만 SI를 열람하는 것과 가공 또는 폐기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 고발 직후 해명자료를 통해 “(군 당국이 취득한) 첩보는 국정원이 공유하는 것이지 생산하지 않는다”며 “국정원이 받은 첩보를 삭제한다고 원 생산처 첩보가 삭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며 검찰 고발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해 ICBM 발사 등 북한 동향을 보고한 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해 ICBM 발사 등 북한 동향을 보고한 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국정원은 서 전 원장의 경우,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히고도 송환된 북한 선원 두 명의 사건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북으로 돌려보냈다고 의혹을 제기해왔다.

탈북자들의 북송 여부는 관계부처 합동신문을 통해 결정된다. 국정원이 주도하는 탈북자 조사절차다. 따라서 서 전 원장이 이를 서둘러 끝내고 탈북 어민들을 송환했다는 게 국정원의 논리다. 하지만 흉악범같은 특수한 경우에 대해 내린 정책적 판단에까지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게 현 야당의 입장이어서 향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서 전 원장이 ‘국내 정보 파트 폐지’ 등 국정원 개혁에 앞장서면서 ‘조직 힘빼기’에 나선 것에 대한 내부 반발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대전 유성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열린 우주경제 비전 선포식에서 누리호 개발 및 2차 발사 영상을 시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대전 유성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열린 우주경제 비전 선포식에서 누리호 개발 및 2차 발사 영상을 시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두 전직 원장을 동시에 고발한 국정원의 행보는 '정치적'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국정원이 제기한 두 사건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사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대준씨 유족을 만나 진상 규명을 약속했고 취임 직후 사건 재조사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용산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해 들여다보고 있다”며 탈북 어민 북송사건 재조사를 시사한 바 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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