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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 좋은 금강서 '4대 90년' 탁주 명가... 복합문화공간 제2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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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술의 대명사 막걸리. 지역마다 맛도 천차만별이다. 같은 재료를 써도 날씨나 빚는 사람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다양하고 제각각인, 술맛의 오묘함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건 무엇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는 ‘물맛'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에 술도가가 선다’는 옛말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 물 맑은 금강을 끼고 앉은 충북 옥천 이원양조장은 이런 점에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술도가다. 질 좋은 곡물과 온화한 기후까지. 이원양조장이 4대에 걸쳐 90년 넘게 고유의 술맛을 이어 가고 있는 비결이다.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 지난 1일.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에 자리한 이원양조장에 들어서자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다. 발효실에서 밑술의 기포가 올라오며 풍기는 냄새였다. 양조장 구석구석엔 대형 옹기 항아리들이 널려 있었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려고 마당 중간에 우물을 파 놓았는데, 우물둔덕도 항아리다. 겉에 쓰인 ‘410L, 74.7’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강현준(51) 대표는 “1974년 7월 세무서에서 나와 항아리 용량이 정확한지 검정을 한 표식”이라며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옛 항아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양조장의 역사는 이 항아리 검정일보다 40년 이상 더 거슬러 올라간다. 양조장은 강 대표의 증조부인 강재선씨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세웠다. 좋은 물을 얻기 위해 증조부는 금강변의 이원면 대흥리에 터를 잡았다. 이를 강 대표 조부인 강문회씨가 이어 받았다. 금강에서 홍수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강 대표 부친 강영철씨가 1949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건물은 증조부가 세웠던 원형을 그대로 옮겨와 복원했다.
1970년대까지 이원양조장은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술도가였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직원만 30명에, 하루 막걸리 판매량만 3,000병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탁주 공급 지역 제한이 풀리면서 지역 양조장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그 파고를 이원양조장도 피하지 못했다. 경영 악화로 강 대표 부친 홀로 주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옥천을 떠나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던 강 대표는 양조장집 아들이지만, 양조장 상황을 전혀 몰랐다.
강 대표가 팔자에도 없는 양조장을 물려받게 된 건 2013년이었다. 어머니 병환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위기에 처한 양조장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양조장 위생 점검을 나온 공무원으로부터 “시설이 비위생적이다”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면허를 반납하라”는 질책을 듣는 부친 모습까지 지켜보게 됐다. 강 대표는 “당시 저는 내심 아버지가 양조장을 그만두시길 원했습니다"라며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집 탁주를 찾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문을 닫냐’고 버티셨고, 평생 양조장을 일군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친의 확고한 장인 정신에 “수십 년 가업으로 해 오던 일을 내 대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결기까지 합쳐지면서 강 대표는 가업을 잇기로 결심을 했다. 건축업을 잠시 중단하고 노후한 양조 시설을 위생 기준에 맞게 보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1년 6개월 동안 서울 집과 양조장을 오가며 쇠약해진 아버지로부터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등 전문 기관의 전통술 교육 과정도 이수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을 보낸 강 대표는 마흔을 훌쩍 넘긴 2017년 초 양조장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시설 보수 기간 일부 휴업을 한 탓인지, 경영 수지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궁리하던 그는 양조장이 1930년대 술도가의 원형을 지키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전통술 체험하는 공간으로 양조장을 꾸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마침 그해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모한 ‘찾아가는 양조장’ 대상 사업장에 뽑혀, 계획에는 더 탄력이 붙었다. 지원금 등으로 막걸리 전시관과 체험장을 조성하고, 주조·시음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단순히 막걸리만 팔던 양조장이 전통을 음미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모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90여 년 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 덕도 봤다. 이원양조장은 쌀을 대량으로 씻던 세미장부터 고두밥을 펼쳐 놓고 식히는 냉각조까지, 근대식 주조장 초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입국실과 누룩방, 발효실 등도 예전 방식대로 운영된다.
원료 창고로 쓰던 방은 지역 양조장과 전통주 역사를 담은 전시실로 꾸며 놓았다. 1930년대 이원양조장 풍경과 직원 야유회 등 흑백 사진들은 흘러온 세월의 더께를 보여 준다. 달구지나 자전거에 실어 술을 배달하던 말통, 갈색 막걸리 술병 등은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강 대표의 손재주로 탄생한 양조 장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발효 용기로 쓰이는 400L 들이 항아리는 무게가 약 70㎏으로, 어른 둘이서 다루기도 버겁다. 고심하던 강 대표는 건설 현장에서 쓰는 장비를 개조해 항아리를 간단히 들어 올리는 기계를 개발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항아리가 돌아가고 뒤집어진다. 덕분에 혼자서 쉽게 옹기를 세척하고 소독할 수 있다. 증류주를 도수별로 자동 분리하는 증류주분별기는 그가 고안해 실용신안을 등록한 기기이다.
강 대표는 막걸리의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막걸리 ‘향수’는 그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펼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제품이다. 100% 우리 밀로 빚은 ‘향수’는 쌀막걸리에 비해 색깔이 짙다. 맛도 더 묵직하고 구수하다. 마치 걸쭉한 미숫가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도수는 9도로, 시중의 흔한 막걸리(6~7도)보다 약간 독하다. 술 빚는 데 쓰는 우리 밀은 전량을 강 대표가 직접 재배한다. 그는 “과거 양곡관리법 때문에 쌀로 술을 못 빚던 시절, 수입 밀로 술을 빚었다. 이걸 우리 밀로 복원해 이원양조장만의 프리미엄 막걸리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제품인 ‘시인의 마을’은 100% 쌀로 빚은 10도짜리 막걸리. ‘향수’와 ‘시인의 마을’은 감미료를 일체 첨가하지 않았다. 옥천 출신인 정지용 시인을 알리기 위해 그의 대표작 '향수'의 명칭을 막걸리에도 붙였다. 두 제품은 밀과 쌀 혼합주인 ‘아이원막걸리(6도)’와 더불어 이원양조장을 대표하는 ‘삼총사’로 인기가 높다.
강 대표의 연구·개발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유통 기간을 늘리고 싶어 2년 전부터 증류주에도 손을 댔다. 최근 증류식 소주 두 가지(밀소주 ‘수작’과 쌀소주 ‘풀섶이슬’)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아 비숙성 제품은 곧바로 완판됐다. 현재 오크통에 보관 중인 숙성 버전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시판할 참이다.
그는 ‘찾아가는 양조장’ 테마에 맞춰 숙박형 막걸리 타운 건립도 준비하고 있다. 전통술을 당일치기로 체험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양조장에서 약 4㎞ 떨어진 저수지 주변에 전통주 체험 관광농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곳으로 이원양조장을 이전하고, 주위엔 밀밭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탁주를 만들어 시음하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1박 2일 막걸리 투어’를 운영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막걸리 타운에 오면 밀밭을 거닐며 가장 신선할 때의 탁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랜 시간 전통을 지킨 지역 양조장을 고장을 알리는 문화관광 자원으로 키우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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