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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앗날 혹은 붕어섬… 구름바위 마을의 추억을 더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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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서쪽에 운암면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면 ‘구름바위’ 마을이다. 섬진강댐 건설로 형성된 옥정호에는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은은하게 물안개가 피어올라 일대가 구름 속에 잠긴다. 장마철 소나기가 쏟아진 후에도 그런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호수 서쪽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 높고 낮은 산줄기를 파고든 물길이 빚은 비경이 줄줄이 이어진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구름바위 마을의 추억도 호숫가에 잔잔하게 흩어져 있다.
전주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따라 약 20㎞를 달리면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운담대교가 나타난다. 옥정호 드라이브 길은 다리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빠지면서 시작된다. 운담대교를 중심으로 상류로 운암면 소재지까지, 하류로 범어리까지 각각 약 10㎞ 이어진다.
대개 댐과 그로 형성된 호수는 이름이 같기 마련인데, 섬진강댐과 옥정호는 예외다. 댐이 들어선 바로 윗마을이 임실 강진면 옥정리다. 조선 중기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옥처럼 맑은 호수가 들어설 곳이라 예언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라 한다. 호수(湖)와 우물(井)의 간극이 너무 크다. 아무래도 댐이 들어선 후 그럴듯하게 끼워 맞춘 듯한데, 아무튼 이 때문에 ‘운암호’ ‘섬진호’로 불리던 호수는 옥정호가 됐다.
옥정호는 섬진강 상류에 해당된다. 댐으로 생긴 호수치고는 물길의 폭은 넓지 않다. 어렴풋이 강줄기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운암대교에서 상류로 방향을 잡으면 오른편으로 호수를 끼고 도로가 이어지는데 맞은편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호수를 조망하기 좋은 곳마다 차를 세우고 쉬어갈 공간이 마련돼 있어 드라이브 여행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운암대교에서 언덕을 한 굽이 넘으면 물길이 휘어지는 모퉁이에 ‘운암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보인다. 최근에 지은 건물인데도 바라보는 정취는 유서 깊은 정자인 듯 그윽하다. 뒤편에 ‘효자운암이선생조삼대(孝子雲巖李先生釣參臺)’라는 비석과 함께 사연이 적혀 있다. 조어대(釣漁臺)가 물고기를 낚는 곳이라면 조삼대는 산삼을 낚은 곳이라 소개한다. 조선 숙종 때의 기록에 따르면 운암 선생이 강가에서 매일 물고기를 낚아 찬거리를 마련했는데, 하루는 물고기가 아니라 산삼이 걸려 올라와 모친의 중병을 낫게 했다는 내용이다.
운암 이흥순은 인조 때 생원시와 문과 별시에 급제하고, 사간과 옥과(현 곡성군 옥과면) 현감을 지낸 후 귀향해 이곳 운암 강변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후학 양성에 힘쓴 인물이라는 약력도 함께 새겨져 있다. 조삼대 비석 옆에는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걷는 형상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운암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아무리 봐도 의미를 모르겠다.
운암정에서 또 산모퉁이를 돌면 제법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연결된 오솔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호수 전망대가 나오고 그 너머로 붕어섬이 납작하게 보인다. 마치 비밀의 공간처럼 등장하는 아늑한 풍광에 잠시 넋을 놓는다. 전망대 양편 숲속으로는 짧은 구간 덱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호숫가로 이어진 ‘옥정호 물안갯길’의 일부다.
호수 전망대에 가기 전 놓친 게 있다. 오솔길 입구에 ‘충정공 양대박 장군 운암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주차장을 넓게 조성해 놓은 듯한데 비석에 눈길을 주는 이가 거의 없다.
이곳 운암면은 임진왜란 전투에서 호남의 첫 승전지다. 남원 출신 양대박은 왜란이 발생한 1592년 4월 두 아들과 함께 50명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해 6월 고경명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전주로 가서 의병을 모았다. 왜군 1만여 명이 선박을 이용해 섬진강 상류인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양대박 장군이 이끄는 1,000명의 의병이 대군에 맞서 첫 승리를 거둔다. 승전비는 원래 운암면 벌정마을에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됐고, 전적지는 이후 물 속에 잠겼다. 승전비가 다시 세워진 건 2006년이다.
옥정호 주변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의 비석만 있는 건 아니다. 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전주 이씨, 전주 최씨, 천안 전씨 등 가문의 세거지와 묘지를 알리는 비석이 경쟁적으로 세워져 있다. 모두 댐 건설로 물에 잠긴 마을을 기억하기 위한 표식이다.
섬진강댐은 건설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착공했다가 태평양전쟁으로 중단되고, 광복 직후인 1948년 공사를 재개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흐지부지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결국 1961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으로 다시 착공해 4년 후인 1965년에야 완공됐다. 수몰 지역 주민 중 많은 이들은 부안의 계화간척지로 이주해 어렵게 새 삶을 개척해야 했다. 옥정호의 물도 일부는 도수로를 통해 동진강 수계로 흘러 호남평야를 적신다. 고향에서 헤어진 사람과 강물이 동진강 하류 타향에서 다시 만나는 형국이다.
운암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입석리, 호수로 가늘게 이어지는 땅끝에 망향탑이 세워져 있다. 잿마을, 도마터, 어리골, 큰벼루, 버들골, 노리목재 등 정겨운 마을 이름과 고향을 등져야 했던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1만5,000여 실향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달래고, 운암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며’ 탑을 세운다고 적었다. 말로 다하지 못할 서러움에도 불구하고 절절한 고향 사랑이 짙게 배어 있다.
바로 앞 물가에는 양요정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현 위치보다 아래에 있던 건물을 수몰되기 전 옮겼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인물인 최응숙이 지은 정자다. 그의 호인 양요당은 맹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따왔다. 호수로 변하기 전에도 이곳 풍광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물은 수수하지만 담백한 청색 계열의 단청과 그림으로 장식돼 있어 남루하거나 허전하지 않다.
주변은 정자의 이름을 따 ‘요산공원’으로 꾸며졌다. 봄가을로 꽃이 화려하지만, 지금은 제멋대로 자라난 루드베키아가 일부 노랗게 군락을 이루고 있고, 역시 자생하는 자귀나무가 보드라운 분홍빛 꽃술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물가에 덱 산책로가 놓여 호젓하게 호수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요산공원 입구는 옥정호 안의 작은 섬, 외앗날과 연결하는 출렁다리 공사로 다소 어수선하다. 외앗날은 마을 외곽의 날등성이라는 의미다. 마을은 옥정호에 잠기고 날카로우면서도 길게 뻗어나간 등성이만 남아 섬이 된 지형이다. 물고기 모양이어서 붕어섬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수몰 마을의 역사가 반영된 외앗날로 부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어디나 흔한 붕어섬보다 말맛도 외앗날이 훨씬 정감 있다. 8월 출렁다리가 완공되면 2가구 주민이 농사짓던 조그마한 섬은 관광지로 변신한다. 섬 안에는 이미 관광객을 맞을 방문자센터가 지어지고 산책로가 조성된 상태다.
외앗날의 전체 모습은 인근 국사봉 능선에서 잘 보인다. 요산공원 위 도로변에 2곳의 주차장이 있다. 도로 바로 옆 3층 전망대(국사정)에서도 섬의 윤곽이 보이지만 높이가 다소 아쉽다. 좀 더 넓은 풍광을 보려면 산길을 좀 걸어야 한다. 능선을 따라 3곳에 전망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주차장에서부터 바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경사가 만만치 않아 거리에 비해 힘이 좀 드는 편이다. 다행히 가장 꼭대기 전망대까지 300m 정도에 불과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걸어도 10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옥정호 물길이 수직으로 내려다보인다. 크게 휘돌아가는 물길 속 외앗날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전날 장맛비가 내리고 맑게 갠 1일 새벽 전망대에 올랐지만, 물안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신 섬의 풍광은 산뜻하게 드러났다. 가장자리에는 수위에 따른 등고선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고, 그 위는 초록으로 덮였다. 빨간 지붕의 방문자센터 건물과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원래의 섬진강 강줄기도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고, 옅은 물안개가 희미하게 골짜기를 감싸니 그 또한 절경이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래산(544m)은 구름모자를 둘렀다. 맑은 날 새벽마다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이유다.
국사봉전망대는 옥정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데도 아직까지 주변에 이름난 식당이나 카페가 없다. 운암대교에서 아래쪽으로 차를 몰아 운정리에 다다르면 전망 좋은 언덕에 대형 카페가 몇몇 들어섰다. 운정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운암면 끝자락 범어리다. 예닐곱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중간에 칠선암이라는 암자가 터를 잡고 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암자로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절집일 듯하다. 범어리에서 산등성이를 넘으면 정읍 산내면에서 다시 호수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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