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운 좋아야 친부모 찾을 수 있어요"... 해외입양인의 기막힌 현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았죠.”
친부모를 찾은 줄리 비엘(한국명 김미주ㆍ43)씨의 2년 여정을 지켜본 김유경 배넷 대표의 한 줄 평이다. 해외입양인들의 핏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 시스템에서 미주씨는 운 좋게도 경찰서에 갔고, 또 열정적인 경찰관을 우연히 만난 덕에 극적 상봉이 가능했다는 진단이다.
4일 관련 법령을 검토해 보니, 해외입양인이 한국에서 부모를 찾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입양특례법’과 ‘실종아동법’ 두 가지다. 친부모가 자녀 양육을 단념한 ‘친권 포기’ 흔적이 있을 경우 입양특례법이, 친부모 정보 없이 유기됐다면 실종아동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해외입양인들에게 국내법은 친부모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다.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서류에 있는 부모 이름을 통해 친부모 주소를 확인한 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서신을 보낸다. 부모가 수락하면 그제야 상봉할 수 있다. 법이 ‘친생부모의 동의를 얻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부모 동의를 받아내기도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서류에 부모 정보가 ‘정확히’ 기재된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미주씨가 그런 사례다. 입양서류에 적힌 친부모 이름과 실제 이름이 달랐던 탓에 그가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끝까지 부모를 찾으려 했다면 애초에 올 수 없는 편지를 그저 기다려야 했다. 실제 보장원 측은 “서류 내용과 일치하는 친부모 정보가 없다”고 답신했다.
실종아동법 역시 경찰 수사 대상에 △실종 당시 18세 미만 아동 △지적ㆍ자폐성ㆍ정신장애인 △치매환자만 포함돼 있을 뿐, 해외입양인 자체는 빠져 있다.
결국 해외입양인이 작은 단서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간 뒤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 실종수사에 나서는 경찰관을 만나야 일말의 기대라도 품을 수 있는 구조다. 미주씨도 직접 경찰의 문을 두드렸고, 열심히 발품을 판 경찰의 노력으로 친부모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외입양인들 사이에선 ‘셀럽 경찰’이 존재한다. ‘○○경찰서 아무개 경찰관을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이다. 특정 경찰서에 해외입양인 업무가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현일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은 “매년 20~30명의 해외입양인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2019년 손동석(37ㆍ미국명 숀 페티프런)씨의 상봉을 도왔던 대구의 한 경찰관은 “입양서류에 ‘어밴던(abandonㆍ버려진)’, ‘XX 거리에서 발견됐다’ 등 문구가 눈에 띄어 법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해 실종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도 “실종 관련 표현을 강조해야 경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종의 ‘팁’”이라고 귀띔했다.
22년간 경찰로 일하며 5,600여 건의 가족 상봉을 도왔던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현행 제도에서는 경찰들이 해외입양인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도 어렵고, 적극 개입은 더더욱 쉽지 않다”면서 “실종아동법과 입양특례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회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남인순ㆍ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난해 5, 11월 입양인에게 친부모 동의 없이도 정보를 주고, 경찰 개입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아직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다. 친부모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미주씨는 그간 수없이 들은 입양인들의 사연이 그늘로 남는다고 했다. “저 역시 부모님을 찾지 못했으면 서류에 적힌 것처럼 엄마가 일부러 내 존재를 지우려 했다는 말을 믿고 평생을 살았을 거예요. 저의 ‘행운’이 다른 입양인들의 ‘권리’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