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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엔 관대하면서 임금엔 왜 가혹한가

입력
2022.07.04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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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넣어드릴까요?" 주유소 직원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기름값이 리터당 1,700원일 땐 오토바이에 5리터씩 넣었지만 2,100원을 넘으니 입술이 떨렸다. 4리터만 넣어 달라 하고 올라가는 숫자를 가슴 졸이며 봤다. 주유가 끝나고 주유기에 남은 기름 몇 방울이 피 땀 눈물처럼 땅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건 기름만이 아니다. 생활비통장 잔고가 0을 자주 기록하고 메꿔야 할 카드값은 늘었다. 주유소 계량기처럼 정확한 금액이 표시되진 않지만 먹고사는 데 필요한 금액이 올랐다. 사람들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지만 물가는 그보다 더 높이 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 그렇다면 노동소득도 함께 올라야 시장원리에 맞다. 동의하기 힘들지만 '노동력'도 상품처럼 거래된다. 노동력 상품에도 원가가 있다. 의식주와 교육, 교통, 통신 등 한 사람이 무사히 출근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다. 노동력 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는 오르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진다. 빚지고 반찬 수를 줄이고, 투잡으로 노동시간을 늘린다. 마침 2023년 최저임금이 5% 오른 9,620원으로 결정됐다. 오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사실상 삭감이다. 시간당 고작 480원 올랐는데, 이상하게도 최저임금에 대한 공격은 여전하다. 예전엔 집값 등 자산 가격 상승이, 최근엔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인상의 원인이다. 노동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도,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기업 친화적 일부 언론들은 임금인상이 물가인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반복한다.

임금과 달리 자산소득에 대해선 관용적 태도를 보인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우리사회는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장려했다. 성공한 투자자들이 미디어에 출연해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을 '경제 무식자'로 취급했다. 공영방송인 KBS는 경제를 가르친다며 '자본주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자산 투자가 주요 내용이다. 대학가엔 주식 부동산 스터디가 생겼다. 투자를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은 능력 있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으로 여겼다. 부자들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수십억의 자산 소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미투자자 피해와 세입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지만, 수십만 원 임금 상승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난을 퍼붓는다. 한 연세대 학생이 최근 청소노동자 임금인상 투쟁으로 학습권을 침해받았다며 손해배상소송을 내 논란이 일었다.

그 학생에 대한 찬반을 넘어 우리 사회가 노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답을 찾기 힘든 경제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막막하다. 자산소유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대안을 찾기 힘들다. 주식시장에서 분할매수를 할지, 고정금리로 대출을 할지, 가치가 떨어지는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회적 약자라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노동조합이다. 영국 배달라이더들은 임금삭감에 항의해 한 달 이상 파업을 벌였고, 미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경제위기 극복의 상징으로 불리는 뉴딜의 핵심도 노조다. 노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없지만 정직하게 흘린 땀의 대가는 지킬 수 있다. 경제위기를 견딜 방법으로 '노동존중'과 이를 실현할 '노동조합'의 고유가치를 재조명하는 여론조성을 기대해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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