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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눈앞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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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 해체의 8년은 종교·민족주의 전쟁과 학살로 점철됐다. 통칭 ‘유고슬라비아전쟁’이다. 그 가운데 다민족 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 독립을 둘러싸고 앞서 독립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이 벌인 ‘보스니아 전쟁(1992.4~1995.12)’이 가장 격렬하고 끔찍했다.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주민은 무슬림계 보스니아인 44%, 정교회 세르브인 32.5%, 가톨릭계 크로아트인이 17%였다. 보스니아 정부는 3국 분할안을 거부하고 1992년 2월 말 국민투표를 감행, 투표율 63.7%에 찬성 97%로 단일국가 독립을 선언했다. 앞서 세르브계는 1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브공화국(이후 스릅스카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국민투표에 불참했다. 스릅스카 공화국과 배후의 세르비아에 의한 유혈 소요사태는 국민투표 전후부터 이어졌고, 4월 공세를 기점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보스니아 전쟁 기간 이어진 학살과 인종청소 사태 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적인 사건이 1995년 7월 11일 스릅스카 공화국 내 도시 스레브레니차에서 일어났다. 스레브레니차는 스릅스카 공화국 경계 안에 있는 거점 도시이면서, 무슬림이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도시는 ‘평화보호 안전지역’으로 선포된 상태였고, 네덜란드 평화군 위주의 유엔보호군(UNPROFOR) 400명도 파병돼 있었다. 하지만 학살 전부터 스릅스카-세르비아 군은 도시를 포위, 장악한 채 이슬람계 고사 작전을 전개했다. 세르비아는 그 도시를 볼모로 전쟁·휴전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세르비아는 1995년 7월 6일, 유엔보호군까지 공격하며 도시를 점령했고, 조직적인 인종청소에 나섰다. 7월 11일부터 약 열흘간, 유엔보호군이 주둔한 ‘유엔 평화 안전지대’에서 공식 집계 8,372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 유엔보호군 지원 요청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네덜란드도 응하지 않았다. 나토가 그해 말에야 전쟁에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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