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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개'에 묻힌 전후 일본 최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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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철 초대 총재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 定則, 1901.7.23~1949.7.5?)가 1949년 7월 5일 실종돼 다음날 새벽 도쿄 기타센주역 인근 선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열차에 치여 처참히 훼손된 상태였다. 취임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이었다.
일본 경시청 합동수사본부는 약 한 달 뒤 자살로 결론지었다. 다른 곳에서 살해당해 선로로 옮겨져 시신이 훼손됐다는 이견과 정황증거들은 철저히 묵살됐고, 수사 결과도 공식 발표가 아닌 ‘문예춘추’ 등 2개 잡지의 독점 보도로 6개월여 뒤에야 공개됐다. 미군정기 최대의 권력형 미스터리가 그렇게 의혹 속에 덮였다.
일본철도는 제국 일본 최대 전쟁·군수 인프라였다. 당연히 국영이었다. 전후 일본의 군국주의 시스템 와해, 재편에 나선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1949년 6월 철도를 공기업화했다.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운영은 민간이 맡는 독립채산 일본국철(JNR)이 그렇게 출범했다.
국철의 최대 과제는 인력 구조조정이었다. 전쟁 전 20만 명이던 국철 직원은 귀환 병사 등을 무차별 채용하면서 전후 63만 명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철도노조의 드센 저항에 맞서 최소 12만 명을 해고하는 게 시모야마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노사대립 이면에는 더 큰 대립 전선이 그어져 있었다. GHQ 양대 조직인 민정국(GS)과 참모2부(G2)의 권력투쟁이었다. 민정국 역할이 반군국주의인 반면 방첩대(CIC)를 산하에 둔 참모2부의 주 임무는 반공이었다. 군국주의 인맥 일소에 좌파까지 활용한 민정국은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참모2부에 밀렸다. 그 틈바구니에 좌파가 다수 포진한 철도노조가 있었고, 강압적 집단해고에 미온적이던 시모야마가 있었다.
일본 사회파 추리·논픽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 1장에서 시모야마 사건의 배후를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시모야마 사후, 노조는 무참히 와해됐고 국철은 1987년 지역별 12개 철도 소유·운영회사의 지주법인인 ‘일본철도(JR)’로 민영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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