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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급 7만 원 착복 말라" 가스점검원들의 절망...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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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7만 원. 서울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이 "기본급 7만 원을 착복하지 말라"고 소속업체(고객센터)와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서울시가 임금을 정하고, 서울도시가스는 서울시 기준에 맞춰 임금을 보내지만, 민간 위탁업체가 임금을 떼어먹는 중간착취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혼자 4,000가구가량을 담당하는 점검원들의 세후 임금은 190만 원가량에 불과한 실정.
서울시와 서울도시가스는 "관여할 수 없다"고 외면하고, 국회에서 중간착취 금지 법안은 낮잠을 자는 중이다. 고물가 시대, 한 달 몇만 원이 아쉬운 이들의 사정은 정부도 정치권도 어느 곳도 돌아보지 않는다.
서울도시가스 위탁업체 소속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으로 9년째 일하고 있는 이모씨. 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20년간 청춘 바쳐 일한 무역회사에서의 경력이 단절된 후, 5년 만에 얻은 값진 직업이었다.
고된 일에 비하면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정해진 임금을 다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분노가 크다.
1년째 이씨의 임금 명세서에 찍힌 기본급은 203만2,000원. 노조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원래 받아야 할 월 기본급은 210만3,800원이다. 7만1,800원이 적다.
서울시는 매년 전문 회계법인에 용역을 맡겨 서울 지역 도시가스 5개 공급사(서울도시가스, 코원, 예스코, 귀뚜라미, 대륜)의 위탁 업무를 수행하는 고객센터 64곳(2021년 5월 기준)의 총괄 원가를 산정한다. 이 원가 항목에 점검원의 인건비도 들어간다.
도시가스는 민간 회사가 공급하지만, 가스요금과 인건비 산정 등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도시가스회사 공급비용 산정 기준’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 산업부 가스관리과 관계자는 "도시가스 요금은 원료비, 가스공사 공급비용, 소매비용이 포함되는데, 시·도에서 산정한 공급 비용 기반으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적정 인건비로 서울형 생활임금을 상회하는 수준에서 정하지만, 민간업체가 착복하면서 인건비가 노동자에게 모두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2020년 대비 인상률 2%를 반영해 새로운 급여 및 상여를 발표했다. 5개사 평균이 227만9,099원이다. 서울시는 한국일보의 문의에 "이 중 기본급은 207만 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도시가스 점검원 노조는 "서울시의 지급 수수료 산정 보고서에 기반해 상여금이 기본급 100%로 1년에 한 번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 계산하면, 기본급은 약 210만3,800원"이라고 밝혔다.
어쨌건 서울시 설명으로는 4만 원, 노조 설명으로는 7만 원의 기본급이 중간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조만간 2022년 인건비를 정하게 되는데, 서울도시가스 위탁 점검원들은 노사간 임금타결을 안 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2020년에 멈춘 월급을 받고 있다.
서울도시가스 위탁업체 소속 점검원 김모씨는 "고객센터는 서울시와 점검원들 사이에서 말을 다르게 하며 임금 지급을 미룬다"며 "서울시 측에는 '산정 기준대로 임금을 지급했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 우리에게는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내용의 서울시 공문이라도 가져오면 임금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시는 "그런 공문은 줄 권한도 없고, 준다 한들 고객센터 측에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와 김씨가 소속된 고객센터 운영 업체인 강북도시가스서비스 관계자는 "지금껏 점검원에 대해서는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에 맞게 임금을 지급해온 사실을 확인했다"며 "임금을 떼먹었다면 진작 고발당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점검원들의 급여 명세서 자체가 서울시 생활임금에 맞춘 금액이기 때문에 임금을 착복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산정액과 급여 명세서가 다른 점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형태의 중간착취는 불법이 아니라서 고발 사항이 되지 못한다.
서울도시가스 위탁 점검원이 약 460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중간에서 사라지는 돈이 1개 공급사(서울도시가스)만 한 해 수억 원에 이른다. 나머지 4개 공급사까지 합하면 서울만 1,068명. 사라진 액수는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나 5개 중 3개 공급사에는 노조조차 없어 사태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시간외 수당은 받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말했다. “우리는 시간외 수당에 해당 사항이 없어요.”
1인당 평균 관리 가구 수는 2020년 기준 서울도시가스 3,907건, 귀뚜라미 4,822건, 코원 5,527건에 이른다. 하지만 외근 업무라는 이유로 '간주근로제' 계약을 하고 연장·야간·휴일 근로의 대가로 '통상수당' 월 19만 원이 전부다. 이에 따라 월급은 세전 222만 원, 세후 190만 원가량이다.
업무 강도는 높다. 김씨는 “고객님들이 퇴근 후 밤 늦게 오셔서 계량기 숫자를 확인하고 연락을 주시기 때문에 퇴근이랄 게 없다”며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는 등 민원도 업무 시간이랄 것 없이 수시로 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근무날 눈·비라도 많이 오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라도 가구를 돌아다녀야 하고, 여의치 않으면 주말에 이어서 일을 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17년을 점검원으로 일했지만 지난 1월 입사한 신입 점검원과 같은 월급을 받고 일한다. 근속 연수도, 호봉도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노동조합이 출범한 후 5년째 근속 연수 인정을 요구했지만 늘 거절당했다”며 “이제는 기본급으로까지 말장난을 하니 절망적인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점검원들은 지난 5월 24일 서울시로 직접 찾아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서울시 도시가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시가 정한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공급사가 점검원의 지난해 인건비를 100% 지급하도록 즉시 권고 이행조치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한국일보의 문의에 "서울시는 지급 수수료 산정을 담당할 뿐, 점검원에 대한 근로 계약의 주체는 도시가스회사 위탁 고객센터"라며 "인건비 조정을 위해 (서울시가) 개입하는 순간 도시가스회사와 고객센터의 경영권이 침해되는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도시가스 측도 "서울시가 산정한 바에 따라 임금을 다 지급했다"며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고객센터와 근로자 간의 노사 문제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고객센터가 임금 비용 전부를 점검원에 제대로 지급하는지 관리·감독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만한 권한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공공위탁 업무에만 해당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사안은 서울시가 민간위탁 당사자가 아니므로 가이드라인 권고 대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위탁을 하는 서울도시가스가 민간기업이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탁·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중간착취가 심각하지만, 고용부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정쟁에 몰두하느라 관련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하청 업체가 근로자 임금 비용을 다른 용도로 쓰지 않게 하기 위한, 중간착취 근절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그러나 소위원회 심사에 이르지도 못하고 답보 상태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원청은 하청이 근로자에게 지급할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을 다른 비용과 구분해 지급하고, 하청은 수령한 임금 비용을 임금 지급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등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도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수수료를 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수수료 상한을 지키도록 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청과 파견업체가 근로자 파견 계약을 할 때부터 파견 노동자의 임금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파견업체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의원실 관계자는 "(발의한 법안이) 법안 소위 심사조차 가지도 못했다"며 "진행된 바가 없어 관련된 향후 계획도 아직 없다"고 답보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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