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삼성전자가 6월 초 반도체연구소와 파운드리 부문 부사장급 등 주요 임원 20여 명에 대한 대규모 인사를 전격 단행한 건 우리 반도체 산업의 위기감을 새삼 확인케 한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올 들어 5나노미터(㎚ㆍ1㎚는 10억분의 1m), 4나노 파운드리의 낮은 수율(완성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때문에 대형 고객사인 엔비디아와 퀄컴 등이 주문을 대만 TSMC로 돌리는 움직임이 노골화했다. 와중에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논란까지 겹쳤다.
▦ GOS 논란은 삼전이 올해 초 야심 차게 출시한 ‘갤럭시 S22’에서 고사양 게임을 원활히 실행시키도록 설치한 기능조절 앱 GOS의 무리한 작동으로 되레 성능이 저하돼 광범위한 고객 불만을 산 사건이다. S22는 이외에도 유럽 출시 제품의 위치확인시스템(GPS) 오작동, 발열 문제 등이 겹쳐 신뢰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모든 문제는 삼전 파운드리 사업부가 4나노 공정으로 만든 앱프로세서(AP)의 수율 등 품질 미흡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 업계에 따르면 당시 삼전의 4나노 공정 수율은 30~35% 수준이었다. 제품 100개 만들면 불량품이 60개 이상이라는 뜻이다. 지난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3.6%, 삼전이 15.3%로 직전 분기 33.8%포인트였던 점유율 격차가 37.3%포인트로 되레 확대됐다. 중국 파운드리의 맹추격 속에 TSMC와의 격차가 되레 벌어지는 와중에 초미세공정 수율 문제가 불거진 것이고, 전격적인 대규모 임원 인사 역시 그런 위기감을 반영한 셈이었다.
▦ 삼전이 30일 발표한 세계 최초 3나노 파운드리 초도 양산 개시는 그간의 위기감을 반전하기 위한 카드다. 4나노 공정 수율 논란 당시, 3나노 수율 역시 10% 내외에 불과해 상반기 양산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보란 듯이 상반기 말일에 양산을 선언했다. TSMC는 올 하반기 3나노 양산 목표라 삼성이 ‘반걸음’ 앞서게 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수율이다. 삼전이 조속히 수율을 끌어올린다면 TSMC와도 겨룰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