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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도, 경찰도 변화 못 느낀다"... '무늬만 자치경찰'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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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自治)경찰제’가 1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경찰 업무 가운데 방범, 교통 등 민생 분야를 떼어내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리ㆍ감독에 맡기는 제도다. ‘공룡’ 경찰의 권력을 분산하고,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를 만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1년 성적표는 처참하다. 제도 시행에 따른 변화가 전혀 체감되지 않는 데다, 권한을 넘겨받은 지자체에서조차 “무늬만 자치경찰” 등 볼멘소리가 무성하다.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을 지휘ㆍ감독할 조직과 인사권, 예산이 없는 ‘3무(無)’ 체제로 제도를 설계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라고 비판한다.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시ㆍ도지사 소속 독립행정기관 자치경찰위원회(자경위)가 지휘ㆍ감독한다. 기존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구조가 경찰청장(국가경찰)ㆍ자경위(자치경찰)ㆍ국가수사본부장(수사경찰)의 ‘3원’ 체제로 바뀐 것이다. 1945년 경찰 창설 후 76년 만의 변화다.
그러나 1년이 지났어도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는 “자치경찰관이 국가직 신분으로 경찰서ㆍ파출소ㆍ지구대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반문했다. 임준태 동국대 교수도 “국민 만족도가 높아지거나, 범죄가 줄었거나 그런 변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경찰 안에선 “‘시어머니’만 하나 더 늘었다”는 불만이 나온다. 부산의 한 경찰관은 “보고를 경찰과 자경위 두 곳에 해야 할 때가 있어 업무 부담이 커졌다”고 푸념했다.
각계의 비판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자치경찰 조직을 신설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나누는 이원화 모델을 추진하다,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별도 조직 없이 기존 경찰이 자치경찰 임무를 맡는 일원화 모델로 방향을 틀었다. 자치경찰이 국가직 신분을 유지하면서 업무 지휘만 자경위로부터 받는 어정쩡한 구조다. 별도 집행 기구도 없다 보니 자경위가 지시 사항을 시ㆍ도경찰청에 내려 보내면 시ㆍ도경찰청장이 이를 다시 경찰서에 지시하는 식으로 지휘ㆍ감독이 이뤄진다.
인사권 또한 제한적이다. 자경위는 경정급 이하 경찰에 대해 전보, 파견, 직위해제 등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 내부 인사시스템에 접근할 수도, 자경위 내 인사 업무를 다룰 승진심사위원회를 설치할 수도 없다. 이에 상당수 자경위는 인사권을 시ㆍ도경찰청장에게 위임하고 있다. 여기에 자경위는 예산 편성ㆍ집행 권한마저 없다. “자치경찰제가 민선시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오세훈 서울시장), “대국민 사기극”(이형규 전북자경위원장) 등 자치경찰 내부에서조차 불만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이에 경찰에서는 “전ㆍ현직 간부급 경찰관 일자리만 생겼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실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국 18개 자경위의 상임위원 34자리 중 18자리(53%)를 전직 경찰관이 맡고 있었다. 또 자치경찰 도입으로 경찰 내 자치 업무를 담당하는 총경급 이상 고위직 30개가 신설됐다.
윤석열 정부가 자치경찰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지도 의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경찰과 자치경찰, 이원화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새 정부가 최근 ‘경찰국(가칭)’ 신설 등 중앙정부의 경찰 통제를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이원화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윤호 교수는 “공룡 경찰이 문제라면 먼저 권력을 쪼갠 뒤 각각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공룡과 전쟁하겠다며 경찰국 신설부터 꺼냈다. 시작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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